이재윤 논설위원
영화를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끝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 어느 것이 맞고 틀린 건 아니다. 두 관람태도 모두 각기 다른 흥미와 재미를 준다.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안다면 팽팽한 긴장감은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점프 스케어(Jump Scare·갑작스러운 전환으로 놀라게 하는 기법) 순간이나 극적 반전의 장면에도 팝콘을 즐기며 느긋하게 화면을 응시한다. '운명을 아는 시선(視線)'이 주는 내면의 평안 때문이다. 반대로 결말을 모른 채 영화를 보면 매 순간을 전율 속에 맞이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장면을 기다린다.
정치 또한 그렇다. 정치 현상을 관찰하는 데도 두 시선이 존재한다. 끝을 알거나 모르거나. 더불어민주당의 당권 경쟁, 8·17 전당대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두 갈래다. 하나는 확실하고 다른 하나는 불확실하다. 정청래가 당대표를 이어갈지, 김민석이 뺏을지, 송영길이 어부지리를 얻을지는 불확실하다. 가능성으로만 점칠 뿐 끝을 모르는 일이다. 대체로 김민석>정청래>송영길 순이라고 한다. 결과가 꼭 그리 되리라는 건 물론 아니다. 끝이 분명한 시나리오도 있다. 정청래는 극구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그가 당 대표 되면 이재명 정부는 집권 2년 차부터 레임덕에 빠진다. 국정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남은 4년 국정은 요동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 이 정부를 편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내우외환의 심각한 도전 앞에 나라 전체가 수습 불가능한 대혼란에 빠지는 것을 걱정해서다.
단순한 명청(明淸)대전이 아니다. "이건 난(亂)에 가깝다"라고들 한다. 여기서 대통령이 졌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2년 전 풍경에 결말이 있다. 윤석열-한동훈 간 헤게모니 투쟁을 생생히 목도하지 않았는가. 결과는 양패구상(兩敗俱傷),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한 사람은 출당, 또 한 사람은 탄핵, 진영은 폐족이 되다시피 했다. 명청대전이 정청래 승리로 귀결하면 그 끝도 보나마나다. 2년 뒤 총선, 4년 뒤 대선도 보장 못한다. 거대 여당의 존재는 사라지고, 민주당은 다수당조차 장담할 수 없다. 진보 20년 집권론은 이미 쑥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의 퇴임 후 곤혹스러운 처지도 눈에 선하다. 두 사람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듯하다. 좌표 찍고 문자 폭탄 난타전은 물론이고, 시대착오적인 적통 논란, ABC론·코어론·재건축론 같은 해괴한 사변적(思辨的) 논쟁들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이게 국민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오만과 독선, 분열로 자멸했던 과거 권력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 분열 10년 주기설'이 시중에 괜히 회자하겠는가.
'시학'(Poetics·아리스토텔레스 저)의 고전적 구조론에 빗대면 지금 여당은 클라이맥스 직전의 크라이시스(Crisis·위기) 단계를 지나는 셈이다. 절정 전 혼돈(Pre-Climax Chaos)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 8·17 전당대회는 그 정점을 향하는 분기점이다. 다행히 민주주의는 단일한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한 시즌이 끝나면 또 다른 시즌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라는 끝없는 시리즈에 위안이 있다.
끝을 알고 사는 삶, 끝을 모르고 사는 삶. 영화는 두 삶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떤 길을 걷고 싶은가?"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는 이 싸움의 끝을 알기는 한 건가. 지금의 사생결단을 멈추지 않으면 비 온 뒤 땅이 굳고 새살이 돋기까지 오랜 시간 혹독한 시련을 또 견디며 기다려야 할 터이다.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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