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한동대 교수
고백하건대 나는 축구를 잘 모른다. K리그도 유럽리그도 관심 밖이고, 월드컵 기간에도 대체로 경기 결과만 확인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축구는 거의 국기(國技)에 가깝다. 제자 중에는 4년마다 월드컵 직관을 떠나는 이가 있고, 많은 남성이 전문가 못지않은 해설을 쏟아낸다. 군대와 축구가 한국 남성들의 대표적인 대화 주제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번 만큼은 나도 참전했다. 대표팀의 부진을 계기로 축구협회를 향한 오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한 경기의 승패를 넘어 한국 축구의 운영과 리더십 전반으로 논란이 번져갔다. 자료를 찾다 보니 2002년의 다큐멘터리부터 박지성과 이영표의 해외 진출, 손흥민의 성장기, 그리고 레전드 차범근까지 우리 축구의 흐름을 훑게 됐다.
1976년 박스컵 개막전,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1대 4로 뒤지자 관중석에서 야유가 폭발했다. 바로 그때 경기 종료 6분을 남기고 차범근이 혼자 세 골을 몰아쳐 4대 4를 만들었다. 그날 차범근은 국가대표 에이스를 넘어 온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당시 여중생이던 내가 그의 등번호 11번을 평생의 최애 숫자로 정한 이유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벅차게 한다. 로마가 시민에게 빵과 함께 경기장을 내어준 까닭도 이런 환희에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50년이 흐른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6분의 기적'이 재현되지 않았다. 조별리그 통과에 대한 기대와 달리 우리 대표팀은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한 채 짐을 쌌고, 후폭풍도 거셌다. 결국 협회장과 감독이 나란히 물러났지만, 리더들의 무성의한 태도와 오래 곪아온 협회 운영방식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그 분노의 에너지가 'K-축구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는 사실이다. 이제 박지성을 비롯해 푸른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성실했던 이들이 행정과 제도라는 또 다른 그라운드에 섰다. "중요한 것은 논의가 실제로 실행되는 것"이라는 박지성의 말은, 이번에도 말잔치로 끝나리라는 해묵은 불신을 정면으로 겨냥한 다짐처럼 들린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승리만이 아니었다. 열세 앞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이 있었다. 차범근의 6분의 기적, 2002년의 4강 신화, 박지성과 이영표의 해외 도전, 손흥민의 월드클래스 도약은 모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영웅 서사였다. 어느 시대에나 영웅은 있다. 문제는 반세기마다 어쩌다 등장하는 한 명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디서나 자라나는 영웅들을 어떻게 길러내느냐다.
축구 선진국은 한 명의 천재로 증명되지 않는다. 가정과 학교, 구단과 협회,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어린 선수 한 명을 알아보고 오래 기다리며 길러내야 진짜 축구 선진국이다. 영웅에게 환호하기는 쉽지만, 영웅을 길러낼 토양을 내 손으로 가꾸는 일은 더디고 지루하다. 대의원 중심의 선거 제도를 바꾸고 수십 년 묵은 카르텔을 걷어내는 일 또한 한두 번의 승리보다 훨씬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축구를 잘 모르는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차범근 선수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경기는 환호가 아닌 책임의 자리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그 경기가 허무한 '침대 축구'로 끝나지 않고 혁신이라는 득점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 이 토양을 일구는 이들의 수고가 기필코 결실을 맺어, 차범근과 같은 영웅들이 곳곳에서 자라나기를. 그 기적의 6분을 다시 보기 위해 나도 이 더디고 지루한 여정에 기꺼이 마음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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