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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경의 공간의 문장] 시민들이 발견하는 도시의 색

2026-07-24 06:00
큰 도시들은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도시 슬로건(slogan)을 정한다. 사진은 이월드 83타워가 보이는 대구 도심 전경. <대구시정영상 유튜브 하늘에서 본 대구(2024) 캡처>

큰 도시들은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도시 슬로건(slogan)을 정한다. 사진은 이월드 83타워가 보이는 대구 도심 전경. <대구시정영상 유튜브 '하늘에서 본 대구'(2024) 캡처>

대학 시절 전공수업에서 인간이 공간을 인지하는 순서가 색, 소리, 냄새의 순이라고 배웠다. 교수님들께서 공간을 디자인할 때 무엇보다 색채에 대한 고려를 심도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최근의 환경심리학자들은 사람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인지하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그 총합에서 오는 '분위기' 즉, '조용하다' '경건하다' '집중하게 된다' 등을 먼저 느끼고, 그 후에 '흰 벽 때문인지' '천장이 높아서인지' '커튼월 때문에 소리가 울려서인지' 등 공간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기는 하다. 건축을 오래 하고 도시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이론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의외로 색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간, 그 도시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장면을 더 오래 기억한다.


큰 도시들은 대부분 그 도시의 정체성, 지향점, 시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도시 슬로건(slogan),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 또는 도시 브랜드(brand)라는 이름으로 기억에 남는 단어의 '도시 이름표'를 달기를 원한다. 현재의 'Powerful Daegu'보다 대구 시민들이라면 대부분 'Colorful Daegu'라는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슬로건에 익숙할 것이다. 심지어 아직 대구의 슬로건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도시는 색채로 기억될까? 대구라는 도시의 색깔은 무엇일까? 대구는 어떤 색깔로 기억되길 원할까. 최근에 대구는 새로운 시장을 뽑았다. 시장 취임도 하기 전 우연히 만난 공무원 중 한 분이 대구의 슬로건을 바꾸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고 고민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한 도시의 정체성, 지향점, 시민의 프라이드가 시장님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바뀌는 것이 맞을까 하는 삐딱한 의견을 교환하며 장난삼아 Wonderful, Beautiful, Peaceful 등 '가득한' 형용사들로 한참 동안 대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단어 놀이를 했다.


문득 궁금했다. 왜 대구는 다른 무엇보다 Colorful 한 도시이고 싶었을까? 어떤 다채로운 색의 이미지를 가진 도시를 지향했던 걸까? 2004년 조해녕 시장은 처음의 'Colorful Daegu'를 만들며 '대구는 다양하고, 다채롭고, 젊고, 밝고, 멋지고, 화려하고, 활기찬 도시 이미지'를 지향한다고 그 슬로건을 설명했다.


건축설계 공모에서나 매 학기 새로운 용도의 건축물을 주제로 시작하는 대학교 설계 스튜디오 수업 때나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또한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프로세스는 콘셉트(concept·개념)를 설정하는 단계다. 학교 설계 프로젝트이건, 실무에서 만나게 되는 건축물 설계에서건 각자가 디자인하는 건물들은 디자이너의 주된 생각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슬로건이란 바로 이런 도시의 콘셉트이다.


대구시 환경색채 가이드라인에서 지정하고 있는 대구 으뜸 10색. <대구시 제공>

대구시 환경색채 가이드라인에서 지정하고 있는 '대구 으뜸 10색'. <대구시 제공>

처음 만든 이후 오랜 세월 'Colorful Daegu'를 도시 브랜드로 사용해온 대구라는 도시의 색깔은 무엇일까? 물론 대구시에도 경관계획, 도시계획을 위한 환경색채 가이드라인이 있다. 건축가로서 도시 경관계획을 위한 색채 가이드라인의 중요성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가이드라인에서 지정하고 있는 '대구 으뜸 10색' 같은 카테고리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대구하늘청색, 목련은미색, 팔공산초록색, 달성토색, 신천청회색 등 색을 규정하기 위해 붙인 장소는 매우 '대구적'이지만 도시마다의 색채적 차별성은 없는 듯하다. 팔공산 초록색은 인천에서는 문학산 녹색, 광주에서는 무등산 초록색이 되는 식이다. 도시의 색이 특정한 장소로 대표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구는 어떤 색깔로 기억될 수 있을까?


대구는 '회색'의 도시일까? 대표적인 아파트 도시인 대구는 신천을 따라, 달구벌대로를 따라 수많은 아파트들이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만드는 색깔은 많은 경관심의, 건축 디자인 심의, 색채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회색'으로 뭉뚱그려진다.


대구는 '붉은색'의 도시일까? 선거 때마다 대구는 언제나 붉은색이다. 대구는 '푸른색'의 도시일 수도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푸른 신천을 몸으로 받으며 뛰고 걷는 시민들에게 대구는 어느 곳보다 '푸른색'이며, 특히 우리 지역 프로야구팀을 위해 야구 시즌마다 우리는 모두 푸른 피가 된다.


어쩌면, 대구 사람들에게 대구의 가장 아름다운 색은 초록도, 빨강도, 파랑도 아닌 여름 한낮, 큰 나무 아래 드리운 그늘이 가진 '그늘의 색'일지도 모른다. 햇빛보다 대구의 폭염을 피하기 위한 처마, 신천변, 두류공원, 앞산공원 등 그늘을 찾는 시민들에게 대구의 색깔은 '그늘의 색'이다. 환경심리학자들의 주장대로 공간을 읽는 순서가 감각보다 분위기였듯이, 도시를 보는 사람들은 색채보다 기억과 장면으로 도시를 기억할 수도 있으니, '대구의 그늘'은 충분히 대구의 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산토리니처럼 흰 벽과 파란 지붕의 강력한 도시 색채가 도시의 브랜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파리는 같은 높이로 가로를 채우는 베이지색 석재보다 야외 카페의 테라스 풍경으로, 쿄토는 도시를 채운 갈색의 목재 건축물보다 단풍의 붉은색, 오사카성의 벚꽃으로 기억된다. 빌바오는 화려한 디자인의 구겐하임보다 네르비온 강변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경험도 있다.


도시를 보는 사람들은 색채보다 기억과 장면으로 도시를 기억할 수도 있다. 사진은 대구 신천의 풍경. <윤동규 건축사진작가 제공>

도시를 보는 사람들은 색채보다 기억과 장면으로 도시를 기억할 수도 있다. 사진은 대구 신천의 풍경. <윤동규 건축사진작가 제공>

결국 'Colorful Daegu'는 시민들, 방문객들에게 색깔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명확한 슬로건에 비해 명확한 색채의 기억을 주는 도시였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Colorful Daegu'는 분위기와 기억으로 다채로워야 한다.


행정은 10가지의 대구 대표색을 정해뒀다. 그렇지만 신천은 청회색이기만 할까. 러너들에게 신천은 훨씬 다채롭다. 팔공산도 사계절의 색깔이 다르다. 서문시장도 사고파는 물건만큼의 색깔이 움직이고, 두류공원, 앞산도 아침과 저녁의 색깔이 다르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만 가지 이유로 채색된다.


대구의 'Colorful Daegu'는 색채 팔레트 위에서 결정되지는 않는다. 명도8 이상, 채도3 이하의 주조색과 색상5R, 명도6 이상, 채도 4 이하의 보조색으로 채울 수는 없다. 사람들의 6 이상의 움직임, 아이들의 3 이상의 웃음소리, 골목을 걷는 방문객의 6 이상의 카메라 셔터 소리로 이루어진다. 자연과 풍경이 겹쳐지며 비로소 한 도시의 색이 된다.


새로운 시장과 함께 출발하는 대구의 새로운 브랜드는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또한 행정은 도시의 색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색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은 결국 시민들이다. 도시는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고, 그래서 대구가 늘 Colorful 한 장면이 넘치는 도시로 한여름 그늘과 한겨울 눈 속에서도 계속 새로운 색을 발견하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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