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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여전히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이들

2026-07-30 06:00
정혜진 변호사

정혜진 변호사

백내장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안과의사가 아닌 안경사를 통해서였다. 노안이 일찍 와서 다초점렌즈 안경을 이미 몇 년째 사용 중이었던 나는 예전에 비해 잘 보이질 않아 '시력이 더 나빠졌나 보다' 생각하고 안경점에 갔다. 평소 가던 안경전문체인점 대신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이웃 동네 작은 안경점에 처음 방문했다.


"몇 년 전에 다른 안경점에서 맞춘 안경인데요. 처음에는 잘 맞았는데, 시력이 더 나빠졌는지 요즘 안경이 도통 안 맞아요. 안경 새로 맞추고 싶어요."


안경사 사장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력 측정을 하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고객님 안경이 지금 고객님 시력에 정확히 맞습니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잘 안 보인다고 느끼신다면 아마 백내장이 진행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수정체가 혼탁해져서 먼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이니 안경이 안 맞는다고 느끼실 수 있거든요. 지금 안경을 새로 할 필요가 전혀 없고요. 조금 기다리셨다가 나중에 백내장 수술하신 후 그때 새로 하시면 됩니다."


안경사에게는 수정체의 혼탁을 직접 확인할 장비가 없다. 시력검사만으로 백내장을 의심한 것은 순전히 다년간의 경험에서 나온 촉이었다. 게다가 안경이 정확히 맞는다며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는 건, 자영업자로선 매출을 포기하는 선택이다. 시력이 그대로인데도 안경을 새로 맞춰준다 해서 손님을 속이는 일도 아니었을 텐데. 그는 상담료나 검사비도 받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몇 주 전, 나는 백내장 수술을 받고 새 안경을 맞추기 위해 그 안경점에 예약 전화를 했다. 안경사는 백내장 수술 후에는 몇 달 기다려 정식 안경을 맞추는 게 좋으니, 임시안경 렌즈는 제일 저렴한 걸로 하되 평소 쓰던 안경테를 꼭 가져오라고 안내해주었다.


지방에서 작은 안경점을 운영하면서 실력과 전문성은 물론 정직함과 고객에 대한 진정한 배려까지 갖춘 그 안경사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친구를 만날 때마다 최근 근황인 백내장 수술 후기와 함께 그 안경사 사장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지인들도 자기가 만난 정직하고 성실한 이웃에 대해 너도나도 이야기를 보탰다. 이사 간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옛 동네 미용실만 찾아간다는 친구, 커피맛 하나로 손님을 붙잡는 젊은 사장이 기특해서 누굴 만나든 그 가게부터 소개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한 친구가 들려준 동네 반찬가게 아주머니는 새벽시장에서 그날그날 재료를 봐 와서 반찬을 만들고, 오후 한두 시간만 문을 연단다. 다 팔면 그걸로 끝, 더 만들어 팔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화려한 사진 한 장 SNS에 올리는 법 없이, 그저 그 시간만큼만 자신의 몫을 해내는 사람들.


뉴스를 보면 온갖 사기가 판을 치고, 실속 없이 현란하기만 한 광고가 넘쳐난다. 세상에 온통 부정적인 것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자극적이어야 관심을 받는 뉴스와 SNS들이 만들어낸 착시일지도 모른다.


임시안경 렌즈는 제일 저렴한 걸로 하고, 쓰던 안경테를 꼭 챙겨오라던 안경사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매출을 조금이라도 더 올릴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손님의 불필요한 지출을 아껴주는 쪽을 택했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그 분야에서만큼은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성실하고 묵묵히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평범한 이웃들. 이런 분들 이야기를 '무더기'로 들은 날, 푹푹 찌는 이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소나기를 맞은 듯 상쾌했다. 여전히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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