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가 골키퍼였다면?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2026년 여름에 막을 내린 북중미 월드컵, 축구 황제 메시가 마지막 월드컵 무대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2004년 스페인 명문 구단인 FC 바르셀로나에서의 데뷔 시절부터 천재적 재능을 뽐낸 그가 비록 이번에 우승으로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불혹을 앞둔 나이에도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마지막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하나씩 제치고 환상적인 골을 터뜨리던 메시, 그런 그가 만약 골문 앞을 지키는 골키퍼였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세계 최고의 축구 천재라도 골문 앞을 지키며 공을 막아내야 하는 자리에서는 그 눈부신 재능을 다 펼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뛰어난 선수라도 자리가 맞지 않으면 제 기량을 온전히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몸속 신경세포에서도 꼭 닮은 일이 벌어진다는 연구가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2026년 6월, 향기박사가 몸담은 디지스트 뇌과학과 이효상 교수 연구팀이 세계적인 학술지 '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주인공은 'TWIK-1'이라는 칼륨 이온통로(신경세포 막에 존재하며, 칼륨 이온을 드나들게 하는 통로)입니다. 연구팀은 이 똑같은 이온통로가 놓인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피부 가까이에서 자극을 처음 받아들이는 말초 감각신경에 있을 때는, 통증을 감지하고 그 지속을 조절하는 '1차 감지기'로 일합니다. 반면 신경 신호가 모여 뇌로 중계되는 척수에 있을 때는, 다른 신경을 눌러 진정시키는 '억제성 신경'이 과열되지 않도록 다스려 회로의 균형을 지키는 '과열 방지 장치' 역할을 합니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 기법을 이용하여 'TWIK-1'을 몸 전체에서, 또는 말초 감각신경에서만, 혹은 척수의 억제성 신경에서만 콕 집어 없앤 여러 종류의 생쥐를 만들어 행동을 하나하나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척수에서 'TWIK-1'을 없앤 생쥐는 붓으로 간지럽히거나 발에 붙인 테이프를 알아채는 부드러운 촉각이 눈에 띄게 둔해졌습니다. 반면 세게 찌르거나 뜨겁고 차가운 자극에는 여느 생쥐와 다름없이 반응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말초에서만 'TWIK-1'을 없앤 경우였습니다. 평소 감각은 멀쩡했지만, 신경을 다쳐 생긴 극심한 통증이 오래가지 않고 6주쯤 지나자 스스로 회복되었습니다. 실제로 다친 신경세포의 지나친 흥분이 가라앉고, 통증과 염증을 부추기는 유전자들의 스위치도 덜 켜져 있었습니다. 똑같은 'TWIK-1' 하나가 놓인 자리에 따라 '촉감을 지키는 일'과 '통증을 오래 끌고 가는 일'이라는 상반된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입니다. 칼륨 이온통로는 늘 통증을 줄여준다는 기존 상식을 뒤집고, 신경병증성 통증(신경이 손상된 뒤 원인 없이 오래 지속되는 난치성 통증)의 새 치료 표적을 제시한 중요한 발견입니다.
이런 놀라운 과학적 성과를 넘어, 향기박사는 이 연구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봅니다. 똑같은 사람도 어느 자리에 놓이느냐에 따라 조직의 평화를 지키기도, 시스템 전체를 과열시키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꼼꼼하고 규칙을 엄격히 지키는 분이 민원을 직접 받는 고객 응대 현장(말초)에 있으면, 작은 불만에도 예민하게 반응해 갈등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분이 감사팀이나 품질관리 부서(척수 중계 회로)로 가면, 흔히 놓치기 쉬운 조직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이런 위험이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훌륭한 '안전장치'가 됩니다. 그러니 조직에 갈등이나 과부하가 생겼을 때, 구성원 개인을 탓하기 전에 그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지혜입니다. 우리 아이가 어느 '회로'에서 빛나는 사람인지는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먼저 아이가 자신의 꿈과 역량을 스스로 찾도록 돕고, 그다음 그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리를 열어주면 어떨까요? 자기 자리를 제대로 만나면,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의 무대에서 메시처럼 눈부시게 빛날 수 있을 테니까요.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