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채 경북연구원 사업지원본부장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는 "안정은 불안정을 낳는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하였다. 경제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성장하면 사람들은 위험을 망각하고 자산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대출은 급증하고 투자 열기는 과열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작은 충격 하나만으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 자산은 급락하고 금융시장은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이는 '민스키 순간(Minsky Moment)'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경제를 돌아보면 이러한 현상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자산에 투자할 때 그 대상은 크게 부동산, 예금, 주식으로 나뉘었으나, 최근에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금, 외환시장까지 투자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생산보다는 단기 투자수익이 기대되는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1970~80년대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할 때는 달랐다. 당시 자금은 공장과 설비를 늘리고 기술을 개발하는 제조업과 생산현장으로 흘러갔다. 기업의 투자는 생산성 향상과 수출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금융은 생산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고, 실물경제의 성장이 자산가치 상승을 이끄는 구조였다.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저성장과 저금리가 장기화되고 늘어난 유동성은 생산투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단기 기대수익에 몰려다니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부동산으로, 주식시장이 상승하면 주식으로, 비트코인이 급등하면 가상자산으로, 국제정세가 불안하면 금시장으로,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외환시장으로 자금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산가격을 실제 가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버블을 만들게 된다. 가격이 오를수록 더 많은 투자자가 몰리고, 대출까지 활용한 투자도 증가한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나 경기 둔화, 정책 변화 같은 작은 계기만 생겨도 분위기는 급격히 바뀐다. 모두가 팔기 시작하면 가격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일본의 자산버블 붕괴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도 AI 관련 주식, 가상자산, 금시장 등에서 비슷한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거품 붕괴는 개인의 경제수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기업의 기술이나 생산성을 초과하는 자산버블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이런 현상을 자세히 보면, 우리 경제는 판돈만 커진 고스톱판처럼 제로섬게임의 한복판에서 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시경제 차원에서 바람직한 투자의 방향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보다 첨단제조업,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처럼 미래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정부도 생산적 투자에 대한 금융지원과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특정 자산시장으로 유동성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거시건전성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는 하나의 시장에 자산을 집중하기보다 예금, 주식, 채권, 부동산 등으로 분산해야 한다.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를수록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인 수익을 가져다준다. 민스키 순간은 언제 찾아올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이 돈을 좇는 경제는 버블과 붕괴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자산가격의 상승이 아니라 생산과 혁신에서 시작된다. 이제 우리 경제도 유동성이 투기장을 찾아 떠돌기보다 새로운 산업과 기술,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경제정책의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할 때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