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초정과 최씨담. 방초정은 방초 이정복이 인조 3년인 1625년에 지은 것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자 앞 연못은 전형적인 방지쌍원도로 최씨담이라 부른다.
마을 앞으로 감천이 가로지른다. 천변은 비옥한 들이다. 마을 뒤로는 매봉산이 솟아 있으니 배산임수의 땅이다. 풍수가들은 물 위에 뜬 연꽃 형상의 명당이라 찬한다. 그 마을 입구에 방초정 팔작지붕이 우뚝 선명한데, 몸체는 무성한 수목들이 감싸 숨겨 자못 궁금하다. 들을 지나 굉장한 왕버들과 가까워진다. 배롱나무 꽃들도 제법 장하다. 무궁화와 맨드라미와 접시꽃과 원추리가 한껏 발돋움해 하늘하늘 생기롭고 채송화는 낮게 무성하다. 그 가운데 푸른 물빛이 반짝인다. 수목들이 감싸 숨긴 것은 방초정이 아니라 연못이었다. 사람들은 이 연못을 '최씨담'이라 부른다.
방초정은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다. 누마루 가운데에는 방 한 칸을 들였고 방에는 온돌이 설치되어 있다.
방초정의 누마루 온돌방은 벽이 아니라 세 짝의 들문으로 이뤄져 있다. 들어 올리면 마루가 되고 내려닫으면 방이 된다. 들문 가운데에도 창을 내었다.
◆ 상원리 원터마을 방초정
마을은 상원리(上院) 원터(院基)다. 조선시대의 관영숙소인 상좌원(上佐院)이 있던 곳으로 연안이씨 집성촌이다. 김천에 연안이씨가 살기 시작한 것은 세종 때 사람 연성부원군 이말정(李末丁) 때부터다. 그는 충청도도사, 판관 등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현재의 김천 구성면 미평리로 이주해 왔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주변으로 분가하였는데, 그의 손자인 진사 이세칙(李世則)이 원터에 정착한 이래 세거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방초정은 마을 회관처럼 자리한다. 서원 입구의 누마루도 떠오른다. 휴식의 공간이자 공동체 공공 공간의 성격이 강했을 것 같다. 어른들은 대소사를 논하고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지 않았을까. 방초정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방초정은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방초(芳草) 이정복(李廷馥)이 인조 3년인 1625년에 지었는데, 처음 자리는 감천 변이었다고 한다. 1689년에 손자 이해(李垓)가 중건했고 1737년 홍수로 유실된 것을 1788년 5대손인 이의조(李宜朝)가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현재 방초정은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다. 누마루 가운데에는 방 한 칸을 들였다. 각 면에 세 짝의 들문을 달았는데, 들어 올리면 마루가 되고 내려닫으면 방이 된다. 정면과 뒷면의 들문 가운데에는 또 창을 내어서, 한 칸 방은 창을 가진 방이다. 방에는 온돌이 설치되어 있다. 한겨울 훈기가 답답하면 창을 살짝 열어 이마를 식힐 수 있겠다. 노란 장판이 깔린 한 칸 방 가운데에 정좌하여 앉아보니 사방이 훤해 조금 쑥스럽다. 누마루를 지지하는 아래 기둥은 마름질에 집착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통나무다. 가운데에는 호박돌을 붙인 벽담이 온돌방과 맞춤으로 서 있는데, 정면 상부에 불 지피는 조그만 아궁이가 까맣게 열려 있다.
'방초'는 8세기 당나라 시인 최호(崔顥)의 시 '등황학루(登黃鶴樓)'에서 따왔다고 한다. 황학루에 오르니 '앵무섬에는 꽃다운 풀들만 가득하구나(芳草萋萋鸚鵡洲)'라는 구절이다. 황학루는 손권이 세운 오나라의 수도 무한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호남의 악양루, 강서의 등왕각과 함께 중국 3대 명소다. '앵무주'는 장강 위의 모래톱으로 후한 말 천재 문인 예형(禰衡)이 강하 태수 황조에게 살해되어 묻힌 곳이다. 많은 시인들이 황학루에 올라 시를 남겼는데, 이백도 '앵무주를 바라보고 예형을 생각하며'라는 시를 남겼다.
방초정에도 많은 시판이 걸려 있다. 20개가 넘는다. 이채, 이철우, 송병준, 김양순, 송환기 등의 이름이 보인다. 특이한 것은 주련처럼 걸린 시제들이다. 기둥이 아닌 기둥 옆, 건물 밖이 아닌 건물 안에 걸려 있다. 이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만영(李晩永)의 '방초정 십경'이라 한다. 찾아보면 이렇다. 1경 일대감호(一帶鑑湖)는 감호일대의 물가풍경을 그리고 있다. 2경 십리장정(十里長亭)은 우뚝 솟아 여행길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정자의 모습을 묘사한다. 3경 금오조운(金烏朝雲)은 금오산의 아침 구름 풍경을 그렸고, 4경 수도모설(修道暮雪)에서는 수도산의 해 저무는 설산풍경을 펼쳐놓았다. 5경 나담어화(螺潭漁火)는 연못에 불 밝히고 고기 잡는 풍경이다. 6경 우평목저(牛坪牧笛)는 들판에서 부는 목동의 피리소리를 들으며 읊는 노래다. 7경 굴대단풍(窟臺丹楓)은 굴대 주변의 붉은 단풍을, 8경 송봉취림(松岑翠林)은 푸른 송산의 수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9경 응봉낙조(鷹峰落照)는 응봉에 해 떨어지는 풍경을, 10경 미산반륜(眉山半輪)은 미산 위에 뜬 반달을 노래한다. 제목만으로도 주변의 무궁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다 보이는 듯하다.
최씨담에는 입수구 3개, 출수구가 1개 있다. 연못은 누정건축의 경관적 기능 뿐 아니라 저류 및 생태적 재처리 등 마을방죽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 방초정과 최씨담
방초정 앞에는 연못이 있다. 가로 28m 세로 25.5m로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방지(方池)다. 연못 안에는 두 개의 둥근 섬이 있어 전형적인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다. 동쪽 섬에는 소나무가 장하고 서쪽 섬에는 배롱나무가 고운데 언뜻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서로를 향해 가지를 뻗은 듯하다. 연못가 연접한 논에 논물이 높다. 금세 찰랑 넘칠 것만 같은데 용케 잔잔하다. 개구리밥 잔뜩 누운 연못 가운데는 잔잔한데 모서리마다 콸콸 졸졸 물소리 난다. 입수구가 3개, 감천으로 향한 출수구가 1개다. 연못은 누정 건축의 경관적 기능뿐 아니라 저류 및 생태적 재처리 등 마을방죽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왕버들은 수백 년은 됨직하다. 배롱나무 꽃은 이제 피기 시작하는 것인가 혹 어제의 비에 진 것인가. 봉숭아꽃이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이정복은 1591년에 인근 하로마을의 화순최씨와 혼인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592년, 그가 홀로 본가에 돌아와 있을 때 전쟁이 터졌다. 임진왜란이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왔다. 너무 빨랐다. 그는 선영이 있는 능지산(陵旨山) 아래로 피신했다. 친정인 하로 마을에 있던 부인 최씨는 왜군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여종 석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향했다. 40여리 산길을 걸어 도착했지만 시댁은 비어 있었다. 최씨는 시댁식구들이 있는 능지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왜구들과 마주쳤다. 그녀는 왜구에게 겁탈을 당하느니 깨끗하게 죽겠다며 웅덩이에 몸을 던졌다. 최씨를 따르던 여종 석이도 뒤따라 자결했다. 최씨의 나이 17세였다. 이후 사람들이 그 웅덩이를 최씨담(崔氏潭)이라 불렀다. 이정복이 최씨담을 확장해 연못을 만들고 그 옆에 방초정을 세웠다고도 하고, 연못 안 두 개의 섬이 주인과 몸종 간의 의리와 부부애를 형상화한 정원시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화순최씨 정려각. 이정복의 부인 최씨를 기려 세운 것으로 인조 임금이 1632년에 내린 어필 정려다.
최씨 부인과 함께 자결한 몸종 석이를 기리는 비각. 연안이씨 후손들이 석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방초정 옆에는 두 개의 비각이 있다. 왼쪽은 이정복의 부인 화순최씨를 기려 세운 인조 임금의 어필 정려이고 오른쪽은 몸종 석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비석이다.
방초정 옆에 두 개의 비각이 있다. 하나는 이정복의 부인 화순최씨를 기려 세운 것으로 인조 임금이 1632년에 내린 어필 정려다. 다른 하나는 최씨 부인과 함께 자결한 몸종 석이를 기리는 비석이다. 이는 연안이씨 후손들이 석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의 비석을 절부의 정려와 나란히 세울 수 없어 연못에 던져놓았다가 1975년 최씨담 준설공사 때 건져내어 현재의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정려 앞에 작은 석상 하나가 서 있다. 여전히 최씨를 따르는 석이인가, 꽃다운 나이에 스러진 최씨의 현시인가, 부인을 그리워하는 남편인가. 알 수는 없지만, 남편은 부인을 오래오래 그리워했다고 전한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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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대전, 서울 방향으로 가다 동김천IC에서 내린다. 동김천IC교차로에서 거창, 경북혁신도시 방면 오른쪽으로 나가 직진, 양천교차로에서 거창, 대덕방면으로 좌회전해 직진, 미평2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들어가면 논 너머 방초정과 함께 방초정 안내판과 상원 마을 표석이 바로 보인다. 방초정 주변에 주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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