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에 담긴 유교 철학
고려 말 창건, 영해 대표 교육기관에서 평생학습 공간으로
경북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 예로부터 '작은 안동'이라 불릴 만큼 학문과 선비정신이 깊게 뿌리내린 이곳에는 오랜 세월 동안 지역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해온 소중한 문화유산이 있다. 바로 경북도 문화유산자료 제513호로 지정된 '영해향교(寧海鄕校)'이다.
68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영덕 영해향교의 삼문. 붉은 문짝에 그려진 태극 문양과 단정한 팔작기와지붕이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향교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선비문화의 첫인상을 전한다. <남두백 기자>
영해향교의 삼문을 지나 정문 역할을 하는 태화루에 들어서면 세속의 공간과 학문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구분된다. 향교에서 누각은 단순한 출입문이 아니라 세속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였다. 680여 년 동안 수많은 유생들이 이 문을 지나며 몸가짐을 바로잡고 마음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보면 영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앞에는 넓은 마당 위에 자리 잡은 명륜당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영해향교의 누각인 태화루. 향교의 정문 역할을 하는 태화루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전통 누각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영해향교는 고려 충목왕 2년인 1346년 지방관 이천년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조선 중종 24년인 1529년 부사 공서린이 현재 위치로 옮겨 명륜당과 태화루를 함께 건립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초에 1군 1향교제에 따라 영해향교가 당시 군 소재지의 영덕향교에 통합됐고 6·25전쟁 당시에는 영해중학교 교사로 사용되면서 소실되었지만 1979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건물을 중건하면서 영해향교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의 향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서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치는 지방의 국립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공자와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향 공간으로서 교육과 교화를 담당했던 대표 공교육기관이었다.
영해향교 박삼락 전교(79)는 "향교는 단순히 제사만 지내는 공간이 아니다. 물질만능의 현대사회에 인과 의, 그리고 효를 중시하며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깨우쳐 주는 정신적 뿌리가 이곳에 있다"라며 "현재와 다른 옛것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향교의 중심 건물인 명륜당은 학생들이 경전을 배우고 토론하던 강학 공간이다. 사방이 트인 넓은 마루는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졌다. 명륜당 좌우에는 유생들의 생활과 학습을 도왔던 동재와 서재가 자리한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학문을 배우고 토론하던 강당이며 좌우의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과 학습 공간으로 사용됐다. 지금도 향교의 교육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로 남아있다. <남두백 기자>
동·서재는 오늘날의 기숙사와 자습 공간을 겸한 곳으로 지방 각지에서 모인 유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학문을 익혔다. 좁은 마루와 방은 소박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중시했던 선비문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명륜당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분위기는 한층 엄숙해진다. 한 단 높게 조성된 곳에 자리한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봉안한 제향 공간이다. 교육 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 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은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배움을 통해 인격을 닦고 그 배움의 근본을 성현에게서 찾는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건물 배치에 그대로 담겨 있는 셈이다.
영해향교 한쪽에 자리한 수령 290년의 회화나무. 보호수로 오랜 세월 향교와 함께하며 선비들의 배움과 지역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온 고목이다. <남두백 기자>
대성전 앞 제단에서는 지금도 매년 봄과 가을 석전대제가 엄숙하게 봉행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의식은 시대가 바뀌어도 향교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정신문화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문화재는 사람이 지킬 때 비로소 살아있는 유산이 된다. 10여 년째 향교를 돌보고 있는 윤미화(70)씨 부부는 매일 낙엽을 쓸고 건물을 살피며 오래된 목조건축의 숨결을 관리하고 있다.
윤씨는 "이곳 전체가 문화재이기에 상시 개방 없이 사전 예약에 따라 출입하고 있지만 이곳을 방문한 문화재 관계자들이 다른 곳에 비해 정말 관리가 잘 되어있다라고 칭찬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향교 한편에는 수령 290년의 회화나무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 유생들의 배움과 지역의 역사를 함께 지켜본 이 나무는 향교와 더불어 영해의 시간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향교 곳곳을 둘러보다 보면 화려한 장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기둥 하나, 창살 하나에도 실용성과 절제가 배어 있다. 이는 학문은 사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세우는 데 있다는 유교의 철학을 건축으로 표현한 결과이기도 하다.
영덕군 영해향교 입구 공원에 조성된 정자 행단정과 장승. 소나무 사이로 난 산책길은 68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영해향교로 이어지며 방문객들에게 고즈넉한 역사문화 공간의 첫인상을 선사한다. <남두백 기자>
영해향교는 지금도 지역민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문화공간이다. 봄·가을 석전대제를 비롯해 충효예절교육, 청소년 인성교육, 전통문화 체험, 한문과 서예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어르신들을 위한 명륜대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교육기관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세대를 잇는 평생학습공간으로 역할이 확장된 것이다.
향교 운영을 담당하는 남정태 총무장의(60)는 "매월 초하루·보름 분향과 귀로연, 유림 교육, 무료 전통혼례 등의 행사를 비롯해 청소년교실까지 운영하면서 현재와 옛 전통을 이어주고 있다"라고 향교의 의미를 말했다.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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