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은 몰리는데 밤은 멈춘다…울릉에는 왜 ‘야간경제’가 없을까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울릉군 울릉읍 강치거리 전경. <홍준기 기자>
지난 22일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경북 울릉군 도동항 여객선터미널 앞은 불과 한 시간 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저녁 식사를 마친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항구 주변을 거닐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오래 머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골목마다 하나둘 불이 꺼지기 시작한 상가에는 하루 영업을 마무리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카페 출입문에는 '영업 종료' 안내판이 걸렸고 기념품 가게는 셔터를 내렸으며, 거리에는 관광객보다 숙소로 향하는 여행용 가방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낮 동안 사람들로 붐비던 도동항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파도 소리와 선박 엔진 소리만 들릴 만큼 조용해졌다.
방파제 끝에 서니 검푸른 바다 위로 오징어 채낚기 어선의 집어등만 희미하게 흔들린다. 늦은 시간까지 머물던 관광객들도 하나둘 발길을 돌리면서 항구는 본래의 적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울릉도의 하루는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
낮에는 섬 곳곳이 관광객으로 활기를 띠지만 저녁이 되면 그 열기는 빠르게 식는다. 일부 횟집과 주점, 편의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점이 영업을 마치고, 관광객들 역시 숙소로 돌아간다.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밤은 그대로 남지만, 그 밤을 경험하고 소비로 연결할 수 있는 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특별기획을 취재하면서 만난 관광업 종사자와 주민들은 하나같이 "울릉은 낮에는 볼거리가 많지만 밤에는 시간이 멈춘다"고 입을 모았다.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서 본 일출. <홍준기 기자>
실제로 울릉도는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우리나라 대표 섬 관광지다. 성수기에는 여객선 예약이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여행객이 몰리고 도동과 저동, 나리분지와 성인봉, 해안도로는 하루 종일 관광버스로 붐빈다. 그러나 여행객들의 하루는 대부분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선택할 수 있는 일정이 사실상 없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울릉도를 찾은 박미경(47) 씨는 "낮에는 하루가 짧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았는데 저녁에는 아이들과 함께 갈 만한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며 "바다를 걷는 것도 좋았지만 하루 정도는 공연이나 야간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을 왔다는 김명환(20) 씨도 "숙소에서 창문을 열면 밤바다가 정말 아름다운데 막상 밖으로 나오면 둘러볼 곳이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며 "울릉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밤 프로그램이 있다면 하루 더 머물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의 아쉬움은 상인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도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저녁 식사 이후에는 사람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숙소로 들어가고, 손님이 줄어드니 가게도 일찍 문을 닫게 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며 "밤에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는 것인지, 문을 닫으니 사람이 없는 것인지 이제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털어놨다.
기념품점을 운영하는 상인도 "낮에는 계산대 앞에 줄을 설 정도로 손님이 몰리지만 오후 8시를 넘기면 거리가 급격히 조용해진다"며 "조금 더 머물 수 있는 콘텐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소비도 늘고 상권도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좌) 오후 8시 도동항 전경, (우) 오전 8시 도동항 전경. <홍준기 기자>
기자가 평일과 주말 저녁 도동과 저동 일대를 둘러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업소는 일부 음식점과 편의점, 주점 정도였고, 대부분의 카페와 상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관광객들은 숙소 주변을 산책하거나 방파제에서 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정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물론 울릉도의 밤이 조용한 것은 단순히 상권의 문제가 아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주민들의 생활 패턴,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관광 수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이기도 하다. 주민 수가 9천 명도 채 되지 않는 지역에서 늦은 시간까지 상권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관광 비수기에는 밤늦게까지 영업을 이어갈 만큼의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최근 관광의 흐름은 분명 달라지고 있다. 관광객들은 더 이상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둘러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그곳의 일상을 경험하고, 주민들과 어울리고, 낮과는 또 다른 풍경을 즐기는 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여행의 기준이 '몇 곳을 다녀왔는가'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울릉도의 밤은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낮의 울릉은 이미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갖췄다. 하지만 밤의 울릉은 아직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또 하나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 그 가능성을 어떻게 지역의 경쟁력으로 연결할 것인지는 이제 울릉도 관광이 풀어야 할 다음 과제가 되고 있다.
관광의 변화는 이미 숫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찾았는지가 지역 관광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지표다. 하루를 더 머무는 관광객 한 명이 지역에 남기는 경제적 효과는 단순히 숙박비만 늘지 않는다.
늦은 시간 카페를 찾고, 지역 식당에서 한 끼를 더 해결하며, 기념품을 구매하고, 주민이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지역 상권 전체에 온기가 퍼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광 전문가들은 최근 지역의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야간경제(Night Economy)'를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유흥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진 뒤에도 관광객이 머물 이유를 만들고 주민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곧 지역경제를 키우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울릉읍 도동리 상가 골목 전경. <홍준기 기자>
울릉도는 오히려 이러한 야간경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밤하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도심의 불빛에 가려진 별들은 울릉에서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쏟아지고, 달이 없는 날이면 은하수가 바다 위로 길게 드리워진다. 파도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해안도로와 밤바다를 밝히는 오징어 채낚기 어선의 집어등, 해안 절벽을 스치는 바람과 항구의 고요함은 그 자체로 울릉도만이 가진 풍경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원이 관광 콘텐츠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밤을 바라보지만, 그 시간을 함께 경험할 프로그램은 많지 않고, 상인들은 손님이 없어 문을 일찍 닫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복된다. 주민들 역시 저녁 시간을 보낼 문화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일상이 단조롭다고 이야기한다.
도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영희(55) 씨는 "관광객들이 저녁을 먹고도 한두 시간 더 머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주변 상권도 살아날 텐데 지금은 식사가 끝나면 대부분 숙소로 돌아간다"며 "야간 공연이나 작은 축제라도 정기적으로 열린다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귀촌인도 "울릉도의 가장 큰 매력은 조용한 밤인데 정작 그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며 "화려한 조명을 설치하거나 번화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밤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울릉다운 방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는 자연과 문화를 결합한 야간 콘텐츠가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밤바다를 걸으며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생태 탐방, 별을 관찰하는 천체 프로그램, 지역 예술인이 참여하는 소규모 음악회, 전통시장 야시장, 계절별 야간 축제 등은 관광객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동시에 주민들에게도 새로운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홍준기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심층 기획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가치를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