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IC서 보문단지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던 사람 형상
37도 한낮 숲머리서 15분…가까이 가니 금강역사 4구
탑이 있던 절은 어디였을까…‘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도림사설 눈길
배롱나무꽃과 푸른 논 너머로 보이는 경주시 구황동 모전석탑지. 논 한가운데에는 통일신라시대 모전석탑의 흔적인 금강역사상과 석탑 부재가 남아 있다. <장성재 기자>
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궁금했다.
경주IC에서 보문관광단지 방향으로 가다 배반지하차도를 지나면 논 한가운데 묘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는 마치 사람 여럿이 둥글게 둘러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직접 걸어가 보기로 했다. 31일 경주 구황동의 낮 기온은 37도까지 올라 있었다.
출발점은 숲머리다. 순두부찌개를 비롯해 갖가지 음식점들이 몰려 있어 경주시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먹거리촌이다. 인근 신라왕경숲에 무작정 차를 세웠다. 목적지 주변에는 마땅히 주차할 공간이 없어 여기서부터 걸었다.
진분홍 배롱나무꽃이 핀 길을 지나자, 주변 들판은 한여름 녹음으로 가득했다. 한낮의 햇볕이 그대로 내리꽂혔다. 땀이 등을 적실 즈음, 차창 밖에서만 봤던 '사람들'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걸어서 15분 남짓이다.
경주시 구황동 들녘 한가운데 남아 있는 모전석탑지. 금강역사상이 새겨진 돌기둥과 크고 작은 석탑 부재들이 푸른 논과 산을 배경으로 천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장성재 기자>
정말 사람이 새겨져 있었다.
돌기둥마다 얼굴과 몸, 팔과 옷자락이 남아 있다. 어떤 이는 몸을 비틀었고, 또 다른 이는 힘을 잔뜩 준 듯한 자세다. 얼굴은 천년 세월에 많이 닳았지만 멀리서 사람처럼 보였던 이유를 가까이 가니 알 것 같았다.
정체는 금강역사(金剛力士)다. 불법을 지키고 악귀를 막는 불교의 수호신이다. 이곳이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지'다.
현재 현장에는 금강역사상 4구가 남아 있다. 이곳에 있던 또 다른 금강역사상 2구는 1915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박임관 경주문화원장은 "이곳 금강역사를 보고 있으면 분황사 석탑에 서 있는 금강역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며 "서로 닮은 모습을 보면 당시 이 일대에서 비슷한 방식의 탑이 세워졌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주시 구황동 모전석탑지에 남아 있는 금강역사상 2구. 서로 다른 자세로 서 있는 두 금강역사의 뒤로 옛 탑의 석재와 한여름 들녘이 펼쳐져 있다. <장성재 기자>
천년 전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다시 세워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남아 있는 석재를 토대로 보면 탑의 한쪽 면은 약 4.5m 규모였고 1층 네 방향에는 불상을 모시는 공간을 따로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부처도, 감실도, 탑의 몸체도 사라졌다. 큼지막한 지붕돌과 여러 석재가 땅 위에 누워 있고 금강역사만 사람처럼 서 있다.
박 원장은 이 모습을 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문화유산에 대해 "이런 큰 석조물은 박물관 안에서 보는 것과 제자리에 서서 주변 풍경까지 함께 보는 게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 서보면 그 말이 조금은 이해된다. 금강역사 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다. 뒤로는 논이 이어지고 도로 건너에는 황룡사지가 펼쳐진다. 좀 더 걸으면 분황사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이 하나 더 있다.
경주시 구황동 모전석탑지에 흩어져 남아 있는 석탑 부재들. 앞쪽의 층이 진 넓적한 지붕돌과 뒤편의 금강역사상 등이 사라진 탑의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장성재 기자>
이 탑은 어느 절에 있었을까.
박 원장은 "황룡사와 분황사, 미탄사처럼 이름이 전해지는 절도 있지만 이 일대에는 이름을 잃어버린 절터가 적지 않다"며 "이 탑이 어느 절에 딸렸던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신라 경문왕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에 등장하는 '도림사'다.
삼국유사에는 경문왕의 비밀을 알고 있던 복두장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다 도림사의 대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혹시 여기가 그 도림사입니까?"
박 원장에게 물었다. 대답은 단호했다.
"그건 몰라요. 도림사가 기록에 있으니 절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여기가 도림사라고 확신할 근거는 없어요."
경주시 구황동 모전석탑지에 남아 있는 금강역사상. 오랜 세월 비바람에 얼굴과 몸의 윤곽이 닳았지만, 힘을 준 자세와 옷주름 등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흔적은 여전히 또렷하다. <장성재 기자>
그러면서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박 원장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닮은 설화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신라 고분에서 페르시아 등 서역 계통의 유리제품이 출토되는 것을 예로 들면서 "옛날에도 물건만 오간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이야기와 문화도 사람을 따라 함께 움직였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경문왕의 귀가 정말 당나귀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도 조금 다르게 바라봤다.
박 원장은 "경문왕의 귀가 정말 당나귀처럼 생겼다는 얘기보다,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임금을 두고 '귀가 이상하다'고 빗댄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오래된 설화를 바라보는 하나의 상상이다.
도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황룡사역사문화관. 구황동 모전석탑지는 황룡사지와 가까워, 주변을 함께 걸어보면 신라 왕경의 옛 공간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장성재 기자>
어느 절이었는지 모른다. 언제 탑이 완전히 무너졌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도림사였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직접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차를 타고 지나면 불과 몇 초다. '저게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사이 금세 지나쳐 버린다. 하지만 숲머리에 차를 두고 15분을 걸어 들어가면 천년을 버틴 금강역사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다.
장성재
동부지역본부 소속입니다. 경주의 현장을 기록하고 지역의 변화를 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