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에 대구로 시집온 팜베남씨의 한국 정착기
13년 만에 빚 갚고 아파트 장만하며 시댁서 인정받아
베트남에서 대구로 시집 온 팜베남씨. <팜베남씨 제공>
"집 나가서 개고생 해봐라."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팜베남(45·대구 동구)씨에게 이 말은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그 말 덕분에 지금은 집도 마련하고 빚도 청산했다.
2003년 22세의 나이로 베트남에서 시집온 팜씨의 한국생활 적응은 누구보다 혹독했다. 시댁은 대구 반야월에서 깻잎하우스 농사를 했다. 시부모를 도와 힘들고 어려운 일은 도맡았다. 약제 살포 도중 졸도해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된 적도 있다.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혼자서 깻잎 수확이 어려울 때 다문화 친구들과 봉사단체에서 깻잎을 수확해 공공기관과 관공서에 판매했다. 수확한 농산물을 노점에서 판매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은 시부모님 통장으로 입금됐다.
아이들이 자라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자 팜씨는 아이 교육비를 위해 깻잎 농사 대신 공장에 취업하겠다는 뜻을 시부모에게 말했다. 그러자 2013년 어느 봄날 비 내리는 저녁, 시어머니는 "집 나가서 개고생 해봐라"며 팜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5살 작은 아이는 등에 업고 9살 큰아이 손을 잡고 우산 하나에 3식구가 의지한 채 집을 나왔다.
낯선 땅에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 소통도 순조롭지 않았던 그가 의지할 곳은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정착을 도와주는 대구민들레봉사단장이 유일했다. 단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 엄마다. '엄마'라며 부르는 팜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서러움을 토하는 눈물은 빗물과 범벅이 됐다. 그날 저녁 간신히 구한 방에서 밤을 지냈다. 6개월 할부로 밥솥을 사고 지역사회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생필품이 들어왔다. 일주일이 되던 날 직장도 구했다. 지역의 한 어린이집에서 무료로 아이들을 돌봐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제2금융권에 갚아야 할 돈이 남편을 따라왔다. 지역 금융기관과 연계해 대출을 정리하고 대신 5년 동안 월 50만원의 적금을 넣어 만기에 금융기관에 갚기로 했다. 수십 번 이혼이란 단어를 생각했지만 사랑스러운 두 아이에게 아빠나 엄마가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란 일념으로 묵묵히 견뎠다.
집 나온 지 13년 '개고생' 끝에 행복이 시작됐다. 빚도 다 갚고 본인 소유의 아파트도 장만했고, 시댁에서도 당당하게 인정받는 며느리가 됐다. 이제 팜씨에게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지난해 남편이 사고를 당해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것이다. 산재 인정 기간이 끝나 이제 개인 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팜씨는 남편의 회복을 위해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오늘도 동분서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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