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최고봉인 강원 양구 가칠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본 남방한계선 투광등. <박종우 작>
밤이 내려앉은 산등성이를 따라 은은한 불빛이 길게 이어진다. 능선 위 작은 건물까지 더해져, 얼핏 보면 깊은 산속 마을의 평화로운 야경이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이곳에는 마을이 없다. 그러니 이 빛 또한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것이 아니다. 이 빛은 남방한계선 철책을 따라 밤새 켜지는 경계 조명이며, 능선 위 작은 건물은 분단의 최전방을 지키는 감시기지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풍경 아래에는 70년 넘게 끝나지 않은 전쟁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자연의 능선을 군사의 선이 베어 가로지르는 곳. 사진가 박종우의 카메라가 마주한 것은 비무장지대(DMZ)의 밤이다.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공간, 비무장지대(DMZ). 1953년 이후 지금까지 정전체제 아래 놓여 있는 이곳은 서울에서 차로 불과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난 사진가라면, 특히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사진기자에게 DMZ는 언젠가 한 번쯤 기록하고 싶은 궁극의 현장이다. 하지만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이곳에서 사진 촬영이라니,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현실에선 어려운 꿈이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룬 사람이 있다. 사진가 박종우. 그래서 그가 한없이 부럽다.
경기 연천의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박종우 작>
서쪽으로는 드넓은 평야가, 동쪽으로는 험준한 산악지형이 하염없이 이어진다. 폭 4㎞, 길이 248㎞에 이르는 비무장지대는 서해에서 동해까지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채 한반도를 가로지른다. 남과 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땅은, DMZ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 공존을 한순간에 끝내버렸다. 1950년 6월25일 시작된 참혹한 전쟁은 37개월 만에 총성을 멈췄지만, 숲과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떠난 자리를 다시 채운 것은 자연이었다. 사람의 접근이 제한되면서 숲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야생동물은 이곳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았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듯, 버려진 땅은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그 결과 DMZ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온대 생태계 가운데 하나이자, 멸종위기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지가 되었다.
박종우는 사진기자 출신이다. 11년 동안 다양한 현장을 취재한 뒤 독립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뉴욕타임스'의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2003년부터는 히말라야를 넘나들며 교역하는 소수민족을 20여 년간 기록했다. 국경 근처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을 기록하며 국경과 경계가 삶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분단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정전협정 이후 DMZ를 기록한 최초의 민간 사진가.' 사진가 박종우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가 자신의 사진가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록 역시 바로 이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둔 2009년, 대한민국 국방부는 사상 최초로 DMZ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그에게 작업을 제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당시까지 군에서도 DMZ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사진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주저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해 가을 특별촬영 허가를 받아 민간인 최초로 DMZ 내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촬영을 시작할 당시 박종우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남측 DMZ 내부의 최전방 감시초소(GP)였다. 그는 그 감시초소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특별촬영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셔터를 누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DMZ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하나의 군사작전에 가까웠다. 모든 일정은 몇 달 전부터 세부사항까지 미리 확정됐고, 폭우가 쏟아지거나 안개가 짙게 내려앉아도 합의된 일정을 임의로 바꿀 수 없었다. DMZ에 들어갈 때마다 무려 다섯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촬영 당일, 그는 남방한계선 통문에서 방탄 헬멧과 방탄조끼, 취재 완장을 착용했다. 수색중대장의 인솔 아래 지프에 오르자 병사들이 탄 경호차량이 앞뒤를 에워쌌다. 정전협정에 따라 파란 깃발을 단 차량은 남방한계선 통문을 통과해 DMZ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사진가의 오랜 꿈이었던 비무장지대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강원 고성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박종우 작>
안개에 잠긴 철원의 풍천원 들판. 습지 위로는 두루미들의 우아한 군무가 펼쳐지지만, 들판에는 무수한 대인지뢰가 잠들어 있다. 한국인이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금강산의 집선봉 앞에는 요새화된 감시초소(GP)가 중세의 성처럼 차갑게 서 있다. 겹겹이 설치된 철조망은 큰 포유류의 이동을 막지만, 작은 동물과 철새들은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군사적 긴장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풍경. 비무장지대라는 이름과 달리 세계에서 가장 무겁게 무장된 공간이라는 역설. 박종우는 이곳을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감시초소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GP 밖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소대 규모의 병력이 그의 앞뒤를 에워싸고 함께 움직여야 했다. 정찰로를 벗어난 대부분의 지역은 미확인 지뢰지대였고, 그가 촬영한 장소 가운데 상당수는 북한군의 소총 사격 거리 안에 있었다. 그는 그렇게 냉전의 긴장 한가운데를 걸으며, 아무도 보지 못했던 DMZ의 풍경을 기록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의 군사분계선 표지판. <박종우 작>
사진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시선을 사진에 담고 싶어한다. 하지만 박종우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기로 했다. 비무장지대라는 첨예한 갈등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그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원칙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는 기록자가 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분단을 향한 과장된 감정도, 극적인 연출도 없다. 대신 아름다운 풍경 아래 감춰진 비무장지대의 본질만이 담담하게 남아 있다. 그의 사진이 오래도록 강한 울림을 남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름다운 자연 위에 그어진 군사적인 선, 그 선을 바라보며 지키는 사람, 그리고 인간이 물러난 자리를 차지한 자연이 펼치는 아이러니. 박종우의 DMZ 작업은 국경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Steidl Book Award Asia에서 그가 출품한 가제본 사진집은 최종 선정작 가운데 하나로 뽑혔고, 이듬해 독일의 세계적인 사진집 출판사 슈타이들에서 'DMZ: Demilitarized Zone of Korea'가 출간됐다. 로버트 프랭크, 조엘 마이어로위츠, 에드 루샤, 카를 라거펠트 등 세계적인 사진가와 예술가들의 책을 만들어 온 슈타이들이 한국 사진가의 단독 사진집을 출간한 것은 박종우가 처음이었다.
사진가는 시각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며, 무엇이든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박종우. 그가 생각하는 사진가의 의무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미학적 성취보다 사진이 지닌 본질과 기록성에 집중해온 그는, 한 분야를 오래 바라보고 꾸준히 기록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한다. 그런 그에게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남북 간 긴장 고조로 DMZ 촬영을 중단해야 했던 일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더 이상 DMZ 내부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는 'NLL' '임진강' '감시초소' '전사자 유해 발굴' 등 한반도 분단의 다른 현장으로 시선을 돌려 10년 넘게 작업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그에게 분단은 아직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작업으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은 기성세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장 비극적인 기억이다. 그러나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2세대와 3세대가 살아가는 시대가 되면서 그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사진가 박종우는 말한다. 평화협정 없이 정전협정만 남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 있을 뿐이라고. 그의 사진은 바로 그 멈춘 시간 앞에 서서, 우리가 잊어가는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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