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신진서의 선문답=AI 카타고에 2점 접바둑으로 승리한 인간계 최강 신진서 9단. 대국 열흘 뒤 신진서의 카타고에 대한 후담(後談)이 흥미롭다. "극악무도했다." 어떤 AI에든 이런 평을 들어본 적 없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알파고(10년 전 이세돌과 대결한 AI)는 반집만 이기고 있으면 승리를 선택하며 물러서는 AI였다. 카타고는 자신이 아무리 유리해도 20집, 30집을 이기기 위해 더 좋은 수를 사용한다." 그의 카타고 분석에 일시 생각이 멈추었다. 오직 블루스폿(Blue Spot·최적의 수)만 둔다는 카타고. 신진서는 "이 점을 이용했다"고 했다. 경이로운 고백이다. 최적의 수만 두는 게 바로 카타고의 약점이 됐단 말인가? 그걸 또 이용했다는 신진서? 인간계의 말 같지 않은 말이다.
#이세돌의 관전평=신진서의 선문답은 이세돌의 비범한 관전평으로 일거에 풀렸다. 2점 접바둑이었다. 두 점의 가치는 18집. '저금통 속 18집을 조금씩 내주며 종반까지 4~5집 우세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이 취할 유일하고도 유용한 선택이었다. 그리하다 바둑판을 거의 메워 잔끝내기만 남게 되면 AI라도 손 쓸 수 없다. 실제 신진서-카타고 대국에서 전투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흑 11집반승. 인간의 예상 밖 대승이었다. 여기서 세간의 화제가 된 이세돌의 '떡수' 평이 나온다.
"신진서 9단이 반집에서 최대 한집까지 손해일 것 같은 수를 뒀다. 손해를 보면서 판을 정리해버린 거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수다. AI는 그렇게 못한다. 카타고는 '이게 반집이라도 득이네'라며 그쪽으로 가버렸다. AI는 그것을 최선이라 생각했을 거다." 좁아진 바둑판에서 변수가 줄어들자 카타고는 더 이상 판을 흔들지 못했다. AI는 반집이라도 득 보려고 '최적의 수'를 둔 것이지만 "승부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 순간 판이 끝나버린"(이세돌) 패착이었던 셈이다. 이세돌은 이를 '떡수'라 했다. 전략적 판단 부재로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은 지는 수. 최적의 수만 두는 카타고의 특징을 신진서는 간파했고, AI의 그 기질을 이용해 이겼으며, 이 과정을 이세돌이 온전히 해득한 것이다. 두 천재가 드디어 매트릭스를 이해한 걸까. 그 빈틈을 본 인간이 경이롭다.
#떡수로 망하는 정치=떡수의 함의는 이렇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자승자박(自繩自縛), 득롱망촉(得隴望蜀·농 땅을 얻은 후 촉 땅도 원하다가 결국 화를 부름), 일엽장목(一葉障目·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림),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다), 교주고슬(膠柱鼓瑟·작은 편의를 추구하다 전체를 망침)을 일컫는다. 작금 집권여당의 행태가 딱 그 짝이다. "이러다 다 망한다"는 박지원의 탄식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신천지 논란은 자승자박의 전형이요, 박힌 돌(친청)-굴러온 돌(친명) 싸움은 소탐대실의 지름길이다. 대통령 연임 개헌설은 득롱망촉의 폭주며, 형소법 개정·부동산 세제 개편·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정책, 심지어 대법원장 탄핵 주장은 교각살우의 덫이다. 대통령의 분당 아파트 거래 수법 '셀러 파이낸싱(매도인 직접 대출)'은 교주고슬의 헛발질, 진흙탕 전당대회는 일엽장목의 망조다. 떡수가 쌓여 5년은 우려먹어야 할 저금통 속 덤 18집을 1년 만에 홀라당 다 까먹었다.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의 독주와 무절제가 범인(犯因)이다.
바둑과 달리 정치의 묘수는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다. 이재명 정부에겐 지금이 그때다. 눈앞 편익보다 정치 신뢰와 국민 공감을 회복하라는 충고가 곧 '떡수'의 감계(鑑戒)다.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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