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 만한 데는 죄다 사유지라고 하거나 업소가 막고 있어서 눈치만 보다 겨우 들어왔어요. "
폭염 속 어느 계곡에서 나온 말이다. 이상한 일이다. 계곡물은 누구의 것도 아닌데, 정작 그 물가에 발을 담그려면 시민이 상인의 눈치를 봐야 한다. 경기도의 한 계곡에는 발을 담그려면 찜질방에 입장 후 찜질복을 입어야 했다.
대구·경북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팔공산 자락, 가창, 청도 운문산 계곡. 기자 역시 어릴 때 가족들과 놀러 갔다가 물가 좋은 자리마다 평상이 깔려 있어 한참을 걸어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겨우 자리를 잡으니 상인이 다가와 "여기 앉으려면 백숙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땐 다들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가 관리해야 할 땅과 물 위에, 수십년간 누군가 제 것인 양 써온 관행이 얹혀 있었을 뿐이다.
공공의 것이 조금씩 개인의 것처럼 굳어지는 일은 계곡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바닷가 백사장에 파라솔 대여 업체가 자리를 선점하고, 심지어 평상 앞 공용주차장도 평상 주인의 것이 된다. 도심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벤치 인근 카페가 테이블을 늘리고 등산로 초입 공터가 어느새 특정 업소의 주차장처럼 쓰이는 일들. 처음엔 작은 편의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관행이 되고, 관행은 곧 권리처럼 여겨진다. 계곡의 평상도 그 흔한 패턴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번 전수조사로 그 규모가 드러났다. 애초 파악된 것보다 훨씬 많은 불법 점용시설이 전국 하천과 계곡에 깔려 있었다. 경북도 다르지 않다. 시·군 전역에서 상당수의 불법시설이 확인됐고, 일부 지자체가 직접 평상을 걷어내는 장면이 뉴스가 됐다.
문제는 평상을 걷어내도 오랜 시간 굳어진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여름만 장사하게 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치는 사이, 상인이 직접 평상을 걷어내는 경우는 드물고 지자체가 강제로 철거하는 경우는 미미하기만 하다. 그리고 평상이 사라진 자리엔 더욱 교묘해진 영업방식이 비집고 들어섰다. 계곡 입구 앞 주차장은 잠깐을 세우든 종일 세우든 똑같은 값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모두를 위한 공간을 개인이 독점하고 값을 매기는 희한한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
상인들의 생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 철 장사로 일년을 버티는 이들에게 평상은 절박한 밥벌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절박함이 수십년간 모두의 것 위에서 유지돼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계곡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일은 눈에 보이는 평상 몇 개를 걷어내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함께 쓰는 자리를 개인이 독점하는 방식은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될 수 있다는 걸 이번 주차비 사례가 보여준다. 공공의 것을 공공의 것으로 되돌려놓는 일에 얼마나 더 많은 여름이 필요한 걸까.
이나영
디지털팀 이나영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