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맛대·도르래·회롱틀로 1t 돌 들어 옮기는 전통 ‘드잡이’
남산 석탑·감은사지 석탑·월정교 등 실제 복원 현장서도 활용
74세 윤만걸 석장에서 두 아들·25세 대학생까지…전승의 끈 잇는다
경상북도 무형유산 경주석장 윤만걸 선생이 지난 7일 경주시 통일로 시암공방에서 열린 공개행사에서 전통 드잡이 기술과 석재 이동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장성재기자>
취재는 후배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형, 우리 동네 문화유산에 무형문화유산도 되잖아요?"
경주에 옛 방식으로 돌을 다루는 기술을 지켜온 석장이 있고, 1년에 한 번 그 기술을 사람들 앞에서 직접 보여준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걸어서 만나는 우리 동네 문화유산'을 취재하며 석불과 석탑, 무덤과 비석을 찾아다녔다. 생각해보니 문화유산이 꼭 한자리에 서 있는 돌이나 건물일 필요는 없었다. 사람의 손과 몸에 남은 것도 문화유산이었다.
지난 7일 오후 3시 경주시 통일로 시암공방을 찾았다. 이날 경주의 낮 기온은 35도까지 올랐다.
흰색 개량한복에 안전모와 장갑을 착용한 석공들이 높이 세운 굵은 나무 두 개 아래로 모였다. 나무 위에는 도르래가 걸렸고 굵은 밧줄은 바닥의 커다란 화강암을 감싸고 있었다.
크레인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회롱틀을 돌리자 밧줄이 팽팽해졌다. 처음에는 꼼짝하지 않을 것 같던 돌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내 돌과 땅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무게 약 1t의 돌이 허공에 떴다.
매달린 돌이 흔들리지 않도록 앞뒤에서 움직임을 살피며 밧줄을 당기고 풀어 위치를 조금씩 조정했다. 힘을 모아야 할 때마다 "애혀, 어히야" 같은 짧은 추임새가 터졌다. 흰 개량한복 차림의 석공과 이맛대, 도르래와 밧줄이 어우러지자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그 중심에 경상북도 무형유산 '경주석장' 윤만걸(74) 선생이 있었다.
이날 제4회 경주석장 공개행사에서 선보인 것은 전통 '드잡이' 기술이었다. 윤 석장은 이를 어렵지 않게 설명했다.
"무너진 것은 다시 쌓고, 기울어진 것은 바로잡는 기능입니다. 그게 드잡이입니다."
경상북도 무형유산 '경주석장' 윤만걸 선생과 전승자들이 지난 7일 경주시 통일로 시암공방에서 이맛대와 도르래, 회롱틀을 이용해 약 1t의 석재를 들어 올리는 전통 드잡이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장성재기자>
◆ 돌을 드는 기술, 제자리에 놓는 기술
현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이맛대'였다. 굵은 나무 두 개를 세우고 도르래와 밧줄을 걸어 아래에서 회롱틀을 돌리면 무거운 석재가 조금씩 올라간다. 전통 석재 인양장비인 한식진폴 방식이다.
하지만 윤 석장은 돌을 드는 것만으로는 드잡이의 절반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들어 올리기만 해서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옛 어른들이 쓰던 방식은 돌을 들어 올린 상태에서 줄로 조정해 필요한 자리까지 옮길 수 있습니다."
실제 이날도 1t짜리 석재를 공중에 띄운 뒤 앞뒤에 연결한 줄을 이용해 위치를 조금씩 움직였다. 힘만 세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돌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서로 호흡을 맞춰 힘을 보탰다.
이날 시연은 석조물이 훼손돼 긴급히 해체·복원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홍예를 이루는 석재를 하나씩 들어낸 뒤 다시 자리를 맞추고, 필요에 따라 옆으로 옮기는 작업도 시연했다.
홍예는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맞물려 쌓는 아치형 구조다. 경주에서는 불국사 청운교·백운교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실제 문화유산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현장에서 지금까지 사용돼 온 기술이다.
윤 석장과 가족들은 경주 남산의 여러 석탑을 비롯해 감은사지 석탑 보수와 월정교 복원 등 실제 문화유산 현장에 참여해 왔다.
석탑을 고치려면 수백㎏에서 수t에 이르는 돌을 하나씩 들어내야 한다. 다시 쌓을 때는 석재를 원래 위치에 정확히 내려놓고 수평과 중심을 잡아야 한다. 기울어진 돌을 바로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경주 남산처럼 대형 장비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사람의 힘과 전통 장비가 제 역할을 한다.
윤 석장의 둘째 아들 윤동훈(46)씨는 남산의 한 석조문화유산을 복원할 당시 현장에서 나무를 마련해 이맛대를 세우고 석재를 들어 올렸던 경험을 들려줬다. 형 윤동천(50)씨와는 월정교 복원 현장에도 함께 참여했다고 했다.
남산 석탑을 복원할 때는 동네 주민들의 손도 필요했다. 윤 석장은 당시 주민들이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도왔다고 회상했다.
이날 1t 돌을 들어 올린 모습은 경주의 무너진 탑을 다시 세우고, 오래된 돌을 제자리로 돌려놓아 온 '복원의 기술'이었다.
현장에서 시연을 지켜보던 정해두 서라벌문화유산연구원장은 이맛대와 회롱틀을 가리키며 "이런 장비 자체도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장비만 남겨놓는다고 기술이 전승되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했다.
1t 돌이 허공에 매달리면 작은 움직임도 위험해진다. 누가 앞에서 줄을 잡고, 누가 뒤에서 당길지 정해야 한다. 이맛대가 움직이려 할 때는 사람이 몸무게를 이용해 눌러야 한다.
정 원장은 "줄을 잡는 위치와 이맛대를 다루는 요령은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익혀야 한다"며 "배운 사람이 다시 누군가에게 전하지 않으면 결국 맥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비 사용설명서 한 장으로 대신할 수 없는 기술이라는 얘기다.
경주석장 윤만걸 선생과 전승자들이 지난 7일 경주시 통일로 시암공방에서 이맛대와 도르래를 이용해 약 1t의 석재를 들어 올린 뒤 홍예교 위 제자리로 옮기는 전통 드잡이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장성재기자>
◆ 돌밭에서 이어진 아버지의 기술
윤만걸 석장의 삶에서 돌을 빼놓기는 어렵다.
아들 윤동훈씨에 따르면 윤 석장은 울산 정자 출신으로 젊은 시절 서울과 익산 등지를 다니며 선배 석공들에게 기술을 배웠다. 1980년에는 경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문화유산 보수·복원 현장에 뛰어들었다.
신라문화동인회에서 활동하며 남산의 석탑과 감은사지 석탑, 월정교 등 경주 곳곳의 문화유산 현장을 누볐다.
그 기술은 이제 두 아들 윤동천씨와 윤동훈씨가 잇고 있다.
"언제부터 아버지 일을 배우셨습니까?"
윤동훈씨에게 물었다.
"배운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죠. 그냥 어릴 때부터 했으니까요."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작업장을 따라다녔다. 아버지가 돌일을 하면 잡석을 치우고 뒤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자연스럽게 현장을 익혔다.
"돌공장은 가족들이 안 하면 일할 사람이 없습니다. 힘들고 위험하니까 배우려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윤동훈씨는 문화유산 분야를 따로 공부해 관련 연구기관에서도 일하고 있다. 하지만 공장이 바쁘거나 현장 작업이 필요하면 형과 함께 다시 돌 앞에 선다.
경주석장 윤만걸 선생과 전승자들이 지난 7일 경주시 통일로 시암공방에서 열린 공개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현씨, 임창선씨, 윤동천씨, 윤만걸 석장, 윤동훈씨. <장성재기자>
◆ 74세 석장 곁에 선 25세 청년
시연을 마친 뒤 다섯 사람이 한자리에 섰다.
왼쪽부터 신동현(25), 임창선(64), 윤동천(50), 윤만걸(74), 윤동훈(46)씨였다.
가장 어린 신동현씨는 현재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4학년에 재학하며 전통 석공 기술을 배우고 있다.
윤 석장은 자신의 스승 세대부터 이어진 석공의 계보를 설명하면서 신씨를 "해방 이후로 따지면 5대째"라고 소개했다.
"저 친구들이 앞으로 우리나라 석조문화유산 복원을 해나갈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그에게 25세 청년이 현장에 있다는 사실은 각별했다.
경상북도 무형유산 경주석장 윤만걸 선생과 전승자들이 지난 7일 경주시 통일로 시암공방에서 회롱틀을 돌려 이맛대에 매단 석재를 들어 올리는 전통 드잡이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장성재기자>
이름 없는 소리도 기술이 됐다
이날 현장에서 유독 귀에 남은 것이 있었다.
석공들이 회롱틀을 돌리고 밧줄을 당길 때 내던 "애혀, 어히야" 같은 짧은 소리였다.
처음에는 오래된 석공의 노동요나 특별한 구호가 있는지 궁금했다.
윤동훈씨는 딱히 이름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돌을 움직이려면 힘을 쓰는 순간을 맞춰야 한다. 예전에는 여러 명이 '목도'로 돌을 어깨에 메고 옮길 때도 발이 엉키지 않도록 소리를 내며 걸음과 힘을 맞췄다고 했다.
"그럼 그 소리도 옛날부터 하던 겁니까?"
잠시 생각하던 윤동훈씨가 말했다.
"뭐라고 딱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버지가 옛날부터 그렇게 하는 걸 듣다 보니까 저도 그냥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 말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책을 펴놓고 가르친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돌을 들며 냈던 소리를 곁에서 들은 아들이 어느 순간 같은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를 내고 있었다.
무형유산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시연을 지켜본 박임관 경주문화원장은 이날 현장을 "살아 있는 역사"라고 했다.
박 원장은 "천수백 년 전 신라 석공들도 성을 쌓고 탑을 세우고 건축물의 돌계단을 만들었다"며 "그때부터 이어져 온 기술을 지켜온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공개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연 행사가 끝난 뒤 윤 석장에게 앞으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제는 다음 세대 걱정이지요.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서 제대로 잘 전승이 될지, 단절될지. 그것이 저는 걱정이 됩니다."
그날 만난 문화유산은 돌이 아니었다. 돌을 다루는 사람에게 남아 있었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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