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훈장으로 바꾼 옹이 자국들…새하얀 세계가 품은 위로의 시간
국내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군락지
2020년 국유림 명품숲 선정 후 공개
곧게 뻗은 새하얀 줄기 신비함 가득
생태가치 '우수' 숲 여행하기 좋은 곳
내년부터 '자작누리 치유의 숲' 조성
테마형 치유공간 만들어 관광객 맞이
영양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락에 위치한 영양 자작나무숲은 약 30.6㏊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군락지다. 영양 자작나무 숲은 지난 1993년 산림청이 산림 자원 육성 및 생태계 안정을 위해 자작나무 묘목을 대규모로 심어 조성했다.
곧게 뻗은 자작나무 하얀 줄기들이 빽빽하다. 여름철 자작나무 숲의 위아래는 모두 초록이다. 위쪽은 자작나무 이파리들, 아래쪽은 키 작은 나무 이파리들이 햇빛을 나눠 먹고 있다. 가을이 되면 하늘엔 노란 잎, 땅엔 붉은 잎이 서로 다른 가락으로 어울릴 것이고, 눈 내린 겨울엔 돋아난 눈 기둥처럼 파란 하늘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영양 자작나무 숲, 그 환한 숲속으로, 낯선 세계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간다. 사계절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숲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모두 낯설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이다. 자작나무는 한반도에서 북위 40도 이상 추운 지방에서 자생한다. 남한 지역의 자작나무는 모두 사람의 손으로 심은 것이다. 소나무, 참나무가 우거진 숲속을 다니던 사람들에게 새하얀 수피를 가진 자작나무 숲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평안도 정주 출신인 시인 백석에게도 자작나무 숲은 낯선 것이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의 시 '백화(白樺)'다. 백화는 자작나무를 뜻하는 한자어다.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숲 입구에는 이곳이 대한민국 국유림 100대 명품숲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백석이 1930년대에 함경도 산골을 여행하면서 쓴 이 시는 산골 사람들의 삶 전체가 자작나무와 함께하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행이 '자작나무다'로 끝난다. 이런 반복은 시인이 자작나무 산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낀 경이로움을 전달하면서, 독자들도 마치 빽빽한 자작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 슬쩍 끼워 넣은 것처럼 보이는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이란 구절은 시인이 함경도 자작나무 산골에서 자기 고향을 떠올렸다는 뜻으로 읽힌다. 더 나아가 시인이 낯선 풍경 속에서 자신을 새로이 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한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영양 자작나무 숲을 찾는 여행자들이 낯선 아름다움 속에서 보내는 시간도 휴양과 치유의 과정이 된다. 숲 입구에서 전망데크까지 자작나무 숲길 1코스와 2코스가 조성돼 있는데 각각 1.5㎞정도 된다. 이 두 코스 숲길과 샛길이 군데군데 만나고 헤어지며 조금씩 다른 분위기의 다채로운 숲길을 제공하고 있다. 어두운 숲에서 밝은 숲으로, 밝은 숲에서 어두운 숲으로, 익숙한 숲에서 낯선 숲으로, 낯선 숲에서 익숙한 숲으로 옮겨 다니는 느낌도 맛볼 수 있다.
숲길을 걷다 보면 자작나무 하얀 나무껍질에 나 있는 검은 상처, 여덟팔자 콧수염 같기도 하고 삿갓표(∧) 같기도 한 옹이 자국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햇빛을 너무나 좋아하는 자작나무는 위쪽 가지에 잎이 무성해지면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래쪽 가지를 스스로 떨어뜨린다.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도 마찬가지 작용으로 가지를 떨어뜨린 옹이가 많지만, 자작나무는 흰 껍질과 검고 독특한 형태의 흔적이 대조를 이뤄 특히 눈에 띈다. 마치 흰 나무껍질에 연속무늬를 찍어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 옹이자국은 가지가 떨어진 곳으로 균이나 해충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방어막을 치느라 형성된 것이다.
자작나무는 한반도에서 북위 40도 이상 추운 지방에서 자생한다. 남한 지역의 자작나무는 모두 사람의 손으로 심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작나무의 팔자수염 옹이자국은 햇빛을 많이 받아야 살 수 있는 나무가 겪은 시련의 흔적이며 생존투쟁에서 승리한 영광스런 훈장과 같은 것이다. 또는 아래쪽 가지가 광합성으로 생산하는 에너지와 소비하는 에너지를 비교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순간 가차 없이 잘라내 버리는 비정한 현실의 상징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하고, 가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하겠지만 자작나무들은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숲길을 걷는 동안, 떠올랐다 사라지는 온갖 기억과 생각들 속에서 문득 낯선 숲속에 혼자 있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함경도 자작나무 숲에서 백석이 고향을 떠올리는 순간일 터이고, 영양 자작나무 숲을 찾은 여행에서 쉼과 치유의 경험을 하는 순간일 터이다.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락에 위치한 영양 자작나무숲은 약 30.6㏊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군락지다. 영양 자작나무 숲은 지난 1993년 산림청이 산림 자원 육성 및 생태계 안정을 위해 자작나무 묘목을 대규모로 심어 조성했다. 자작나무 묘목들은 주변 환경과 기후에 적응하면서 전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등 여러 다른 종의 나무들과의 투쟁을 거쳐 지금의 자작나무 숲을 이루어냈다. 줄기에 새겨진 옹이자국이 지난 30여년의 시간을 보여준다.
2020년 '영양 자작나무숲 힐링허브 조성사업'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지역수요맞춤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은 영양 자작나무숲 힐링센터. 영양군은 촌활력센터, 숲 오피스, 특화 거리 등을 조성해 체류형 관광을 위한 기반시설 확충에 힘쓰고 있다.
그동안 영양 자작나무 숲은 산림 보호를 위해 관리되면서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으로 있었다. 지난 2020년 산림청이 영양 자작나무 숲을 '국유림 명품숲'에 선정하면서 비밀의 베일이 벗겨졌다. 숲의 경관과 생태적 가치가 우수하고 숲 여행하기에 좋은 곳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듬해에는 자작나무 숲을 포함한 수비면 죽파리 국유림 83㏊와 국유임도 7.1㎞가 '국민의 숲'으로 지정됐다. 국민의 숲은 국민이 숲 가꾸기 등 국유림의 보호·육성사업에 참여하고 산림교육 및 산림문화ㆍ휴양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산림청이 운영하는 곳이다.
영양 자작나무 숲은 탐방로와 편의 시설이 갖춰지면서 숲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지난해에는 7만5천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산림청장배 전국산악마라톤대회도 열려 자작나무 숲을 널리 알렸다.
영양 자작나무숲까지 방문자를 태우고 가는 전기차. 평일에는 40분 간격, 주말 및 공휴일에는 30분 간격으로 상행 9시30분~15시30분, 하행 10시~16시 운행하고 있다.
영양군은 자작나무 숲을 관광자원화 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 2019년 경북도, 남부지방산림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자작나무 숲 관광자원화에 나섰다. 지난 2020년에는 '영양 자작나무숲 힐링허브 조성사업'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지역수요맞춤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됐으며, 총사업비 54억원을 투입해 힐링센터와 주차장을 조성하고, 친환경 전기차를 도입했다. 관광객들은 주차장에서 자작나무 숲까지 4.7㎞를 셔틀 전기차를 이용해 갈 수 있게 됐다. 전기차 매표소에서 탑승권(무료)을 받고 탑승대기실이나 카페 '자작'에서 기다리다 운행시간에 맞춰 셔틀 전기차에 탑승하면 된다. 현재 평일에는 40분 간격, 주말 및 공휴일에는 30분 간격으로 상행 9시30분~15시30분, 하행 10시~16시 운행하고 있다.
산림청과 함께 추진하는 '국립 영양자작누리 치유의 숲'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조성사업에 들어간다. 국비 75억원을 투입해 숲, 정원, 길 등 여러 가지 자연경관을 활용한 테마형 치유 공간을 마련해 관광객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체류형 관광을 위한 기반시설 확충에도 나선다. 영양군은 '자작누리 산촌명품화 사업'을 통해 산촌활력센터, 숲 오피스, 특화 거리 등을 조성해, 한 번 보고 가는 관광이 아니라 머무르고 쉬면서 일도 하고 즐기는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글=김광재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공동기획 - 영양군청>
이지용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 전문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