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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의 민초통신] 노무현이 해석한 약팽소선

2026-08-18 06:00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20년 전 이야기다. 대학교수들이 2006년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약팽소선(若烹小鮮)'을 제시했다. 노자도덕경 60장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치대국(治大國) 약팽소선'이다.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하라. 가만히 놔두고 지켜보아야 옳지 쑤셔대고 휘저어 생선이 뭉개지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하라는 얘기다.


교수들은 지나온 해, 2005년의 세태는 주역에서 따온 상화하택(上火下澤)으로 진단했었다. 위는 불, 아래는 연못. 위로 타오르는 불과 아래로 흐르는 물이라니, 이반 분열하던 당시 사회상을 한마디로 꼬집은 말이었다. 두 단어를 연결하면 지난해 갈등과 반목이 극심했으니 올해는 좀 가만히 둬 시끄럽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였다.


물론 현실은 그랬지만 시민들에게 약팽소선, 상화하택은 참 생경한 단어였다. 일각에선 교수들이 일부러 어려운 한자만 골라 잘난 척, 아는 척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주석 없이 누구도 이해를 못 해 교훈이 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하례회의 인사말에서 새삼 그 얘기를 꺼내 다시금 세간의 화제가 됐다.


# "보수적인 구호라 걱정했다"


노 대통령은 "약팽소선이라, 생선을 구울 때 지긋이 익도록 기다려야지 자꾸 뚜껑 열고 뒤집고 흔들면 다 깨져 못 먹는다는 얘기겠지요?"라고 미덥잖은 양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개혁이네 뭐네 하고 자꾸 들쑤셔서 잘 가고 있는 나라 좀 흔들지 말고 그냥 가만히 놔두라는 취지라고 TV에서 평론하는 걸 보았다"라고 부연했다.


그는 "가만히 놔두자는 게 사실 보수적인 구호 같아 걱정했다"라더니 "그런데 어떤 칼럼에서 경제성장 잘하는데 자꾸 성장, 성장하며 들쑤시지 말고 가는 대로 내버려 두자는 식 해석을 했더라"라고 분위기를 틀었다. 흔들지 말고 가만히 놔두라는 얘기를 지금 경제성장이 잘돼간다는 자랑으로 은근슬쩍 말꼬리를 바꿔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신 좀 덜 바쁜, 그러나 민생에는 중요한 일들을 챙겨서 하다 보면 다른 바쁜 일들도 다 함께 잘돼갈 것"이란 낙관론을 폈다. 또 나라가 잘되려면 "같은 말을 다르게 해석하는 여유도 좀 갖고 보편적 상식과 사리는 물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바꿔서 생각해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라며 역지사지를 권유했다.


정권 운용에 대한 비판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오히려 개혁에 대한 지지를 부탁한 셈이다. 게다가 신년하례회의 덕담으로 한 말이니 야당 참석자들도 손뼉을 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다고 정치 상황과 여건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이고 '모두가 다 노무현 때문'이란 유행어도 계속해서 나돌았다.


그럼 2005~2006년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 입법 처리 실패로 2005년 벽두부터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내홍을 겪었다. 여야의 극한 대립이 일상이 되다시피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전제로 한 대연정을 제안했으나 여야 모두의 비난만 한 몸에 받았다.


경제적으로는 강남 집값이 폭등한 가운데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8·31 부동산 특별대책과 종합부동산세 실시 등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2005년 말엔 쌀 관세 비준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항의 시위와 자살이 속출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불러온 양극화는 뚜렷한 해소 전망도 없이 심화하는 양상이었다.


2006년 정부는 대여섯 차례 개·보각으로 민심을 다잡아보려 했으나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총리가 3·1절 골프 파동으로 경질되었고 교육부총리는 논문표절 의혹으로 사퇴했다. 또 한차례 부동산 대책이 나온 날 담당 장관은 부동산가격 폭등 대응 부실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전북지사 단 1석만 얻어 참패했다.


#노무현 이재명 정부의 닮은꼴


지금 20년 전의 정치 경제 상황을 복기해보는 이유는 자명하다. 상황이 요즘과 꽤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 등 부동산가격이 거의 광풍처럼 치솟은 것이나 일부 경제 지표가 착시효과를 불러오는 것은 그때와 그대로 닮았다. 노무현 시대 처음 코스피 지수가 2000을, 이재명 시대엔 9000을 넘었다. 양극화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정부가 허둥지둥 서두르는 것도 그때와 판박이다.


폭등하는 집값을 잡겠다며 종부세를 도입 강화한 것이나 지금 보유세를 늘리는 세제가 마련되는 것도 비슷하다. 2006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것이나 올해 4만 달러를 넘길 것이라고 정부가 공언하는 것은 여지없이 같은 모습이다. 국민이 잘살게 됐으니 의식 수준 또한 높아져야 한다고 말하는 투도 엇비슷하다.


정치 환경도 그렇다. 개혁론자 대통령에 여대야소, 여권 분열의 일부 가시화 양상도 같다. 이재명 대통령 실용주의를 두고 내부에서 "증축하랬더니 재건축한다"라는 반발이나 노 전 대통령에게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라는 비난도 비슷하다. "폭탄은 저쪽에 던졌는데 우리 편 등 뒤에서 터졌다"라는 말은 양자에 다 해당한다.


이른바 개혁 입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모전과 민심 이반도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하다. 이 대통령은 "일은 참 잘한다"라는 극찬 끝에 최근에 지지율 데드크로스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은 탄핵에서 살아 돌아와 제법 지지세를 유지하다 재임 중 역대 대통령 최악인 10% 아래로 추락하는 롤러코스터 변동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을 것이다. 앞서 든 예시처럼 노 전 대통령은 현안이나 의혹에 정면으로 부닥쳤다. "개혁? 그만 좀 시끄럽게 해"라는 주장에 "경제성장 잘되잖아. 들쑤시진 않아도 개혁은 해야 해"라고 받는 식이었다. 스스로 꿀릴 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때문일 것이다. 솔직하고 사심 없이 현안을 대한다는 자세였을 것이다.


# 사심 없는 솔직한 설명 필요


그러나 요즘 이재명 대통령이 맞부닥친 현안에서는 그런 모습이 부족해 보인다. 검찰의 보완 수사권 폐지 형소법 개정안에 공소 취소 요건 확대 내용이 들어간 데 대해서도 별로 말을 않는다. "읽어보지 않아서"라는 다소 엉뚱한 표현이 여론 질타를 받는 것은 말 자체보다 솔직하지 않음이 문제 된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장이 연임 개헌은 국민의 선택이라는 말로 의혹을 키운 일도 마찬가지다. 헌법 정신도 그렇고 개헌 당시 현직 대통령은 연임 불가라고 자신이 이미 밝힌 바 있다는 옛이야기만 내세울 뿐 똑 부러진 답을 않는다.


노무현이 검찰 개혁 첫 단추를 풀고자 '적과의 토론' 심정으로 '전국 검사와의 대화'를 공개리에 했던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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