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김민석=오랜 시간 김민석은 '민주당 당대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로망(roman)'이란 허구적 요소가 많은 중세 통속 소설을 말한다. 전기적(傳奇的)이고, 주로 기사도(騎士道)를 다룬다. 상상으로만 갈망하는 꿈같은 이야기다. 헛된 망상이지만 그런 꿈은 누구나 하나쯤은 지니며 산다. 김민석은 '86 운동권 선두주자'로 DJ에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다.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겪은 김민석으로서는 '민주당 당대표'가 늘 머릿속에 맴돈 로망이었을 법하다. 꿈속 상상을 현실에서 이룬 8월 17일의 김민석은 8월 16일의 김민석과 분명 다른 김민석이다. 야인 생활 18년, 광야를 지나 꿈에 그리던 그 성(城)안에 들어섰다. 이 과정을 지켜본 박지원은 "오디세이보다 재미있었다"라고 했다. 하나의 로망을 완성한 김민석은 새 로망을 꿈꿀지도 모른다. 정치는 늘 더 큰 욕망을 자극한다.
착각하면 안 된다. 당신은 피사체(被寫體)다. 이재명의 후광에 힘입은 바 크다. '팀 정청래'가 정권을 흔든다고 판단한 호남이 집단이성을 발휘했다. 이재명 정부에 저주를 퍼부은 유시민은 실은 '츤데레(ツンデレ·겉은 까칠하나 속은 우호적인 사람)'였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김민석의 조력자가 됐으니 말이다. 김민석은 양(陽)으로는 호남과 이재명, 음(陰)으로는 정청래·유시민·김어준의 반사체였다. 그만 보고 그를 선택한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찬란한 순간인지 모른다.
#정청래=정청래는 다르다. 그는 발광체다. 정청래의 주장처럼 '패널 100명이 일방적으로 욕하고' 대통령과 권력의 모진 견제에도 지지층과 권리당원의 40% 중후반대 지지를 받은 건 경이롭다. 오로지 본인의 정치력으로 이 정도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인은 진보진영내 정청래밖에 없다. 전대 직후 라이브 방송을 켠 정청래의 뒤끝이 예사롭지 않다. 깨끗한 승복 대신 구질구질한 꼬리를 달았다. 그러면서 "할 말 하며 살겠다. 인생 뭐 있나"라고 했다. 마이웨이 선언과 진배없다. 뒷배 김어준은 한 수 더 떴다. "친명이라 내세우는 것이 자기 정치에, 당선에, 도움이 되나를 의원들이 이제 따지기 시작할 거다." 분열 조장 수사법이다. 친명도 "김어준이 발톱을 드러냈다"며 즉각 날 세웠다. '팀 정청래'의 뒤끝은 민주당의 앞날에 불길한 기운을 드리운다. 벌써 탈당, 납부 당비 축소, 조국혁신당 지지 등 조짐이 보인다.
#이재명=시선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쏠린다. "민주당은 하나일 때 가장 강했다." 첫 메시지의 방점은 '통합'이었다. 대통령 역시 사면초가다. 한국갤럽의 14일자 지지율 조사를 기점으로 모든 여론조사의 데드크로스(긍·부정 역전)가 완성됐다. 지지율은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다. 사법리스크는 다시 부상하고, 언론 비판과 야당 공세는 더 거세지며, 모든 정책은 여론의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정청래가 됐다고 레임덕에 빠지고 김민석이 됐다고 안 빠지는 게 아니다.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 훈수(訓手)가 봇물 터진 듯하다. 그중 딱 하나만 골랐다. 임미애(비례·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의 충고다. "의제(議題) 관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시끄러워 보인다. 어느 곳 하나 안심할 구석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모두 드러내면 국민은 불안해진다." 국무회의·대통령 업무보고의 '만기친람 생중계'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김민석도 '당무 생중계'하겠단다. 나라가 더 시끄럽게 됐다. 웬걸, 첫 최고위 회의부터 격노했다. "대법원장 당장 물러나라." 국민은 또 불안하고 불편하다. 이건 하수(下手) 정치다. '유능한 이재명 정부'의 빛이 바래고 있다.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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