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때문에 나는 문학이 무엇이라고 믿으며 산다. 다른 사람의 꿈에서 등장한 나 때문에 시를 잠시 느낄 수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일. 미신을 잘 믿는다. 미신을 자주 믿는다. 뭐랄까 그런 일들이라 부를 만한 사건들을 몇 번 겪었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 인과를 증명할 수 없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래서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서리에 앉지 않으려 하고, 접시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반찬을 먹지 않는다. 밖에 버려져 있는 가구를 절대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옷장이나 선반이나 전신 거울 같은 것들.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떨고 있을 때 자책하며 멈춘다. 꿈이 흉하면 더 조심해서 하루를 보낸다.
내 주변 사람 또한 나에게 전파된 것인지 미신을 잘 믿는다. 사주나 관상 같은 것. 옛날부터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미신 때문에 나는 문학이 무엇이라고 믿으며 산다. 시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지만 이런 것도 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꿈에서 등장한 나 때문에 시를 잠시 느낄 수 있었다.
한때는 작가가 꿈이었고 지금은 글과 멀어지겠다며 선언하고 살아가는 선배가 있다. 미신을 신뢰하는 나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고, 일상이 좋아질 거 같은 것은 굳게 믿으며 사는 선배가.
어느 날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꿈에서 내가 나왔다고.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데 잡아주지 못해서 계속 내가 떠내려갔다고 오늘은 물 조심하라며 형은 말했다.
형에게 물었다. 어떻게 내 얼굴인지 알았냐고. 그러게. 그냥 넌 줄 알았다고 느낌이 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선배는 안면인식장애가 있었다. 내가 안경을 쓰고 학교에 갈 때에는 한 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선배의 꿈에서 나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꿈에서 어떤 느낌을 주었기에 나를 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오래오래 나는 이 일을 곱씹는다.
새로운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 나와 당신에게 문학이 있고 우리는 읽어야만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현대시를 같이 읽는 시간에 학생이 나에게 묻는다. 요즘 시는 뭔가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때마다 대답이 달라진다.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느낌이란 뭘까요?
느낌이란 뭘까. 요즘 시는 새로운 느낌을 말하고자 한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느낌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시적 문장은 무엇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문장이 문장을 불러서 다음 문장을 만들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온 단어들을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기도 한다. 결코 연쇄되지 않은 단어의 연결이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느낌일까. 정말 소중한 것을 이야기하려 할 때 설명하다가 말고 이내 느낌으로밖에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물건, 나를 이야기할 때 설명으로는 모든 것을 말할 수가 없다. 느낌에 집중하고자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대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내가 사랑하는 물건이 나를 얼마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를 말한다. 사실 그것만으로는 내가 그것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예시인 느낌으로 말하려 하는 것이다.
조연호 시인의 시 '배교'가 수록된 시집 '천문'. <창비 제공>
"색약인 너는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 만약 불타는 숲 앞이었다면 여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겠지/ 소년병은 투구를 안고 있었고 그건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하고/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이다"(조연호 시집 '천문' 중 '배교' 시편)
느낌. 처음 조연호 시인의 시를 읽으며 느꼈던 그 당혹감을 같이 공유하고 싶다. 색약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종일 잿빛이겠지.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깎아주는 것은 경계선일 것이다. 불타는 숲이 빨갛거나 녹색이 아닌 재의 색으로 흔들리는 무언가를 보면서 화자는 계절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불타는 숲을 배경으로 소년병은 투구를 꼭 안고 있다. 자기 투구이거나 남의 투구일 수도 있겠다. 벌레는 잎을 파먹고 있고 잿빛의 시선에서 그것은 회색의 경계선이 또 다른 테두리를 가지는 일. 여름이 여름을 만드는 일. 여름이 여름을 껴안는 것처럼. 무언가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벌레 먹은 잎의 부분은 회색으로 본다면 불타는 형상일 수도 있겠다. 시인은 그 부분을 가장 황홀한 부분이라 말한다. 명암과 색 사이 선이 만들어진다.
시를 읽고 난 후에 해석을 붙였다만,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은 느낌이다. 회색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배경, 잿빛, 쓸쓸한 소년병 같은 것이 나를 슬프게 만든다. 새로운 슬픔이다.
느낌을 설명하려 하면 오류가 생긴다. 내 문장이 타인에게 공감을 살 수 있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 당신에게 나는 어떤 느낌을 주는 인간인지 알고 싶다.
결국 사람이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학이겠지만. 사람을 말하는 것은 어렵다. 쉬워서도 안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요즘 문학 또한 같이 어려워지는 것이겠지. 느낌만큼은 인간은 아직 많은 것을 알아가야 할 것이고 새로운 느낌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AI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것일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먹을 때 느낌, 8시간 이상 푹 자고 일어났을 때 느낌 같은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 느낌을 설명하지 못해 고민하는 나만 있을 것이고. 느낌을 설명하려다 포기하고 문학으로 느낌을 흉내 내보려고 시도하는 불쌍한 나만 있을 것이다.
당신도 꿈을 꾸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꿈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무채색으로 꿈꾼다고 들었다. 흑백 영화처럼 상영되는 꿈을 또 어떤 사람은 알록달록한 꿈을 꾼다고 들었다. 당신 꿈에서 나온 그 또는 그들은 어떠했는가? 울고 있지는 않았는지 해맑게 웃고 있었는지 또는 떠내려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먼저 손을 내밀어주고 싶다. 손을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읽고 쓸 것이다. 새로운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 나와 당신에게 문학이 있고 우리는 읽어야만 하니까.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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