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복 공인회계사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 앞에는 수많은 시련이 남아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낯선 것은 칼도 창도 아닌 세이렌의 노래였다.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누구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게 했지만, 자신은 귀를 막지 않았다. 대신 그의 몸을 돛대에 단단히 묶으라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로 풀어주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그는 풀어 달라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의 명령대로 밧줄을 더 단단히 조였다. 지혜로운 영웅은 왜 스스로를 묶는 선택을 했을까.
오디세우스가 두려워한 것은 세이렌 자체가 아니었다. 정작 두려운 것은 그 노래 앞에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할 자기 자신이었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휴대전화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의 결심이 내일 그대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일까.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유일까. 아니면 순간의 욕망을 넘어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자유일까.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와 달랐다. 칸트에게 자유란 곧 자율이었다. 그는 인간을 욕망과 충동에 끌려가기만 하는 존재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인간은 이성을 통해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다. 자율은 이성이 옳다고 인정한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디세우스의 선택도 그런 자유를 보여준다. 그는 귀향이라는 삶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 순간의 충동을 미리 제약했다. 몸은 돛대에 묶였지만, 삶의 방향만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릴 줄 알았기에 미리 스스로를 묶은 것이 그의 지혜였다. 원칙은 미리 세워두어야 유혹의 순간에도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이 역설은 오늘날 전문직 윤리에도 이어진다. 전문직은 많은 권한과 재량을 부여받는 만큼 그에 걸맞은 규범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회계감사인은 독립성을 지키며, 법관은 이해충돌이 있으면 사건을 회피하고, 의사는 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원칙에 따라 판단할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다. 압력과 이해관계가 커질수록 원칙은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원칙은 흔들리기 전에 세워두어야 한다.
현장에서 원칙의 힘은 유혹 앞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실적 압박은 조급함을 만들고, 조직은 타협을 권하며, 시장은 끊임없이 유혹한다. '이번만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원칙보다 앞서는 순간, 위험은 이미 시작된다. 작은 예외가 서서히 원칙을 무너뜨리는 법이다. 그러므로 전문직의 규범은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라기보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원칙으로 보아야 한다. 회계감사인에게 요구되는 감사절차, 감사품질관리, 이해상충방지 규정은 모두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안전장치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자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의 선택은 오늘날 우리와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유혹 앞에서 흔들리며, 원칙보다 편의를 먼저 선택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자유는 유혹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유혹 앞에서도 원칙을 끝까지 지킬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오디세우스는 자유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가 돛대에 몸을 맡겼듯이 우리 역시 흔들리는 순간을 지탱할 버팀목이 필요하다.
누구나 살아가며 저마다의 세이렌을 만난다. 그 순간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미리 스스로 세워 둔 원칙, 곧 우리 각자의 돛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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