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한마디를 한다. 평소 상속과 관련하여 아들들에게 하던 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상속은 유능한 자식에게는 무익하고, 무능한 자식에게는 유해하기 때문에 상속할 생각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애들 기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느낌이 싸할 때는 참아야 하는데 발끈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내가 노력해서 번 돈,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대꾸했더니, "그 돈이 왜 전부 당신 거냐, 절반은 내 거니 상관하지 마라"고 반박한다. 비록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혼인 당시 전세자금을 본인이 마련하였고, 장기간 혼인 생활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재산분할을 하더라도 절반은 본인 몫이라며 매우 논리적으로 주장하는데 무릎을 꿇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변호사의 배우자로 30년 살면 법률전문가가 다 되나 싶었다. 아내를 재산분할 전문가로 만든 것은 변호사 남편 덕이 아니라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재벌들의 이혼소송 때문이다. 과거 변호사에게 이혼 사건은 의사에게 감기 치료처럼 취급되었지만, 요즘은 거액의 재산분할이 문제되면서 전문 영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민법 제839조의 2는 이혼한 배우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면서, 가정법원이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의 액수와 기타 사정'을 참작해 그 액수와 방법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상 이혼에서도 민법 제843조에 따라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혼인생활이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 유지된다는 헌법적 가치가 담겨 있기도 하다.
대법원도 재산분할은 명의가 누구인지보다 실질적인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하고 있다. 배우자가 직접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고 상대방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했다면 그 역시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은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성경에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구절이 있다(마태복음 19장 6절). 그만큼 혼인관계란 신성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해지하려고 하면 신중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많은 이혼 사건을 담당한 경험을 가진 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는 행복한 이별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재벌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재벌의 이혼은 재산분할에 따른 주식의 분배와 연결되어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권까지 문제 된다. 이 경우 당사자 두 사람의 재산권을 넘어 기업과 다른 주주의 이해관계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이번 소송들을 통하여 기업가치에 대한 배우자의 기여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고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실존철학자 키르케고르가 말했다. "결혼하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시작한 결혼이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사랑도 그렇듯 이혼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결혼 30주년을 진주혼식(珍珠婚式)이라고 한다. 진주가 조개의 아픔과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듯이 오랜 세월 부부로서 서로의 상처나 허물을 감싸 안아 보석처럼 된 것을 의미한다. 거의 변호사가 다 된 아내가 AI를 통해 더 전문성을 갖추기 전에 진주혼식 기념 여행 계획이라도 작성해서 보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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