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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사과하지 않는 사회

2026-10-1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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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  HRD교육원 부원장

전영 HRD교육원 부원장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사라진 사회다.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로 장병들이 다쳐도, 정책 실패로 개미 투자자들의 통장이 토막 나도 책임자들의 입은 묵묵부답이다. 도로 위에서 사고를 유발시키고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운전자들의 태도에도 사과는 없다. 권력자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지금 대한민국은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불통의 시대'다. 우리는 왜 이토록 사과에 인색해진 것일까.


지난달 서부전선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지뢰가 폭발해 국군장병이 다쳤다. 국민들의 마음이 철렁했던 불의의 사고에 군책임자는 진심 어린 사과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회 국방위원장은 북한의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발언을 쏟아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정부정책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퇴한 청와대 전 정책실장은 주식·부동산 시장의 혼란으로 수많은 국민이 손실을 입었음에도, 재임 시는 물론 물러나는 순간까지 사과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사과 부재' 현상은 일상에서도 만연하다. 몰상식한 가해자들은 교통사고를 일으키고도 진심 어린 사과 대신 "보험사에 말해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학폭을 저지른 가해자나 그 부모들도 자신들의 허물 덮기에 급급할 뿐 피해자에게 고개 숙일 줄 모른다. 사과(謝過)의 기본 전제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철저히 마비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되었는가. 지난 칼럼에서 짚었듯, 우리 사회가 타인의 작은 실수나 불행을 먹잇감 삼아 무차별적 비난을 퍼붓는 '혐오의 사회'로 변했기 때문이다. 잘못에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회에서 사과는 비난의 빌미를 주는 자폭 행위가 된다. 사과하는 순간 매장당한다는 공식이 오만과 변명이라는 방어막을 치게 만든다.


여기에는 두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작용한다. 첫째, 공적영역의 극단적 '진영 논리'다. 정치 현장에서 사과는 '정치적 패배'로 인지된다. 한 번 잘못을 인정하면 상대 진영은 이를 공세의 빌미로 삼아 도덕적 매장을 시도한다. 이들에게 사과는 국민에 대한 섬김이 아니라 당파적 자멸을 뜻하기에 오만을 선택하게 된다. 둘째, 사적영역의 '사법적·재정적 만능주의'다. 불신 사회에서 사과는 배려가 아닌 '과실을 인정하는 법적 증거'로 변질된다.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모든 손해를 뒤집어쓰는 행위가 된다.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사과를 '정치적 자폭'으로 몰아붙이는 대립을 넘어, 과오와 실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사과나 유감 표명이 분쟁에서 불리하게 오용되지 않도록 성숙한 정치환경을 마련하는 동시에, 리더 스스로 사과를 '사회의 안전망을 세우고 국정 신뢰를 회복하는 공적 용기'로 인식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일상적 배려 문화도 재건되어야 한다. 공적 사과가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운다면, 시민들이 일상에서 나누는 작은 사과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불신을 녹여내는 피와 살이다. 타인을 불편하게 했을 때 자신의 실수를 작게나마 인정하고 건네는 "미안합니다"라는 말 한마디와 정중한 태도가 그 시작이다. 그 짧은 표현이 타인의 불쾌감을 누그러뜨리고 서로 인간성을 확인하는 소중한 연결고리가 된다.


위정자들의 엄중한 공적 책임 의식과 제도 개혁, 그리고 시민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성숙한 존중의 태도가 함께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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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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