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중 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대구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가 있다. 1900년 봄, 부산에서 출발한 배 한 척이 낙동강을 거슬러 화원 사문진나루터에 닿았다. 배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가 하나 실려 있었다. 짐꾼들이 낑낑대며 짊어지고 옮긴 상자 안에는 다름 아닌 피아노가 들어 있었다. 이 땅에 서양식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순간으로 지역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당시 부산에서 대구로 물건을 들여오려면 육로나 수로를 이용해야 했다. 무겁고 부피 큰 피아노는 결국 낙동강 뱃길을 따라 사문진까지 올라왔다. 이 나루터가 자리한 화원 일대는 대구 도심을 가로지르는 금호강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1천600년 전에도 이 물길을 오가던 사람들의 흔적이 있다. 삼국시대의 배모양 토기가 그것이다. 흙으로 정성껏 빚은 작은 배는 죽은 이의 관 곁에 놓여 저세상으로 가는 먼 길을 함께 떠나기도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수십 점으로, 대부분 낙동강과 남강, 바다에 인접한 가야 지역 무덤에서 나왔다. 노를 걸던 자리, 파도를 막던 널판, 배가 벌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던 멍에, 방향을 잡던 키까지 세세하게 표현돼 있다. 강을 오가던 작은 배부터 바다를 가르던 큰 배까지, 당시 배의 다양한 모습을 짐작케 한다. 이 작은 토기에는 배를 만들고 다루던 옛사람들의 기술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계에서는 가야 사람들이 남해안을 거쳐 대한해협 너머 왜와 교류하던 항로를 추정하는 자료로도 삼는다.
그런데 배모양 토기가 가야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낙동강 중류에 자리한 대구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한 대구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12호 수혈(구덩이) 출토품이 그 사례다. 이 유물은 무덤이 아니라 살림터 부근에서 항아리 같은 생활 유물들과 함께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대구 땅에서 발견됐다는 점도 새삼 반갑다. 화원에서 금호강과 합쳐진 낙동강이 옥포와 논공, 현풍을 지나 닿는 강가 마을에서 나온 유물이다. 길이 25.6㎝, 너비 6.9㎝의 작은 토기는 통나무배 몸체 위에 파도를 막는 구조를 얹은 2단 형태다. 뱃전 양쪽에는 노를 걸던 자리가 세 쌍이나 정교하게 표현됐고, 바닥에는 세워 두기 위한 굽다리가 붙어 있었던 흔적도 남아 있다. 낙동강 중류에 터를 잡고 살았던 옛 대구 사람들에게도 배와 물길은 낯선 세계가 아니었던 셈이다.
1천600년 전 강가의 누군가는 배의 모습을 흙으로 빚어 남겼고, 120여 년 전에는 그 물길을 거슬러 온 배 한 척이 대구에 낯선 소리를 실어 왔다. 배에 실린 것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오래된 물길은 대구 사람들을 더 넓은 세상과 이어 주었다. 강을 곁에 두고 살아온 그 마음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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