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회의실에서 같은 안건을 두고 두 목소리가 갈리는 순간이 있다. "일단 해봅시다"와 "정말 괜찮을까요". 한쪽은 답답해하고, 다른 쪽은 불안해한다. 오랫동안 필자는 이것을 성격 차이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 갈림길에 이름을 붙여두었다.
컬럼비아대의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는 사람이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눴다. 향상초점과 예방초점이다. 향상초점의 사람은 얻을 것을 바라본다. 이상과 성장,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이 그를 움직인다. 예방초점의 사람은 잃을 것을 바라본다. 의무와 책임, 지켜야 할 것들이 그를 움직인다. 한쪽은 가속 페달이고, 다른 쪽은 브레이크다.
창업 초기의 필자는 철저히 향상초점의 사람이었다. 잃을 것이 별로 없었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될지 안 될지보다 해볼 만한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함께하는 동료가 늘고, 그들의 생계와 시간이 내 결정에 걸리기 시작하자 질문이 바뀌었다. 무엇을 얻을까보다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할까를 먼저 묻게 되었다. 처음엔 그것이 겁이 많아진 것 같아 부끄러웠다. 지금은 안다. 그것은 책임이 생긴 사람의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다만 예방초점에는 함정이 있다. 성경 속 달란트 비유를 떠올려보자. 주인은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고 떠난다. 두 종은 그것으로 장사해 갑절을 남겼지만, 한 종은 두려운 마음에 땅을 파고 묻어두었다.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은 그를 엄하게 꾸짖는다. 지키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었다. 두려움이 지키는 이유의 전부가 되었을 때, 그는 맡겨진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신중함과 두려움은 겉보기에 닮았지만, 하나는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 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인가. 필자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브레이크는 차를 멈추게 하는 장치지만, 역설적으로 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대로 멈출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누구도 속도를 낼 수 없다. 레이서들이 코너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느려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코너를 빠져나가며 다시 가속하기 위해서다. 가속과 제동은 서로를 방해하는 힘이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한 쌍이다.
히긴스의 연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어느 초점이 더 우월하다는 결론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상황과 맞는가였다.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는 향상초점이, 이미 쌓은 것을 지켜야 할 때는 예방초점이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한쪽에만 머무를 때 생긴다. 늘 달리기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크게 넘어지고, 늘 멈춰 있는 사람은 끝내 아무 곳에도 닿지 못한다.
오늘 우리가 AI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한쪽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면 뒤처진다고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지금 멈추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고 경고한다. 사실 둘 다 필요한 목소리다. 가속만 있는 사회는 방향을 잃고, 제동만 있는 사회는 출발조차 하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두 힘이 서로를 신뢰하는 구조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회의실에서 "해봅시다"를 외치는 사람과 "괜찮을까요"를 묻는 사람은 모두 적이 아니다. 한 사람은 엔진이고, 다른 한 사람은 브레이크다. 좋은 리더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이 밟을 때인지 놓을 때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이 신중함은 지켜야 할 것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그저 두려움에서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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