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정 대구대 문화콘텐츠학부 교수
병원 안의 권력과 부조리에 맞서는 천재 외과의사의 이야기, SBS 드라마 '닥터X : 하얀 마피아의 시대'의 흥행세가 매섭다. 이달 9일 첫 방송에서 전국 가구 시청률 11.4%로 출발해 지난 24일 방송된 6회에서 19.5%를 기록했다. 넷플릭스에서도 10월 12~18일 시청 수 710만 회를 기록하며 글로벌 비영어 쇼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뜨거운 관심 속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반발도 나왔다. 자신을 정형외과 의사라고 밝힌 한 시청자는 회진을 불필요한 잡무처럼 다루고 의료진을 무능한 악역으로 단순화한다며 방송심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의사 개인의 문제 제기지만, 논쟁은 드라마 속 의료 현실의 재현 방식으로까지 번졌다. 흥행과 논란이 교차하는 자리에는 우리 사회가 의료에 품어온 기대와 불신이 놓여 있다. 환자보다 권력과 조직의 이해가 앞서는 병원을 보며 우리는 묻게 된다. 의사는 누구를 위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드라마의 주인공 계수정은 의사용역소개소에서 파견된 프리랜서 외과의사다. 그는 병원의 위계와 권위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의 수술 실력으로 의사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하얀 마피아'라는 도발적인 표현은 여기서 의미를 얻는다. 생명을 지켜야 할 전문성과 권위가 조직의 이해를 지키는 수단으로 바뀔 때, 하얀 가운은 신뢰의 상징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 시청자가 계수정의 거침없는 행동에 통쾌함을 느끼는 이유도 그가 무너뜨리는 권위 너머에서 환자의 자리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의 해법을 현실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뛰어난 의사 한 사람이 모든 난관을 돌파하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지만, 실제 의료는 여러 직종의 협력과 지속적인 돌봄으로 이뤄진다. 수술의 성공을 자신하는 영웅의 모습만으로 의료행위의 불확실성을 지울 수도 없다.
그렇다고 드라마의 과장이 현실의 질문까지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3회에는 병원 청소노동자가 뇌동맥류로 병원에서 쓰러지지만, 당시 병원 안에는 그를 수술할 의사가 없는 상황이 등장한다. 이러한 역설은 의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주민에게 중요한 것은 병원의 간판이나 의사 수의 총합만이 아니다. 아이가 아플 때, 출산이 임박했을 때, 응급수술이 필요할 때 자신을 맡길 의료진이 실제로 있는가 하는 문제다.
한국 사회의 필수의료 공백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전기모집 결과, 소아청소년과 확보율은 26.2%, 산부인과는 63.4%, 외과는 80.5%였다. 영상의학과가 정원을 모두 채운 것과 대비된다. 비수도권 소아청소년과는 모집 정원 85명 중 10명만 확보했다. 의정갈등 이전부터 필수과와 지역의 인력난이 겹쳐 있었던 것이다. 전공 선택을 개인의 이기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높은 당직 부담과 의료사고 위험을 줄이고 수술·입원에 대한 보상 문제를 개선해야 할 국가와 병원의 책임도 크다.
이런 현실에서 올해 치르는 2027학년도 입시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에서 지역의사 490명을 처음 선발한다. 선발된 학생은 학비 등을 지원받는 대신 의사면허 취득 후 공고된 지역에서 10년간 복무한다. 공적 지원을 지역의료에 대한 책임으로 연결하는 제도다. 전문과목 선택에는 제한이 없지만, 본인의 의무복무지역에서 외과·심장혈관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 등 9개 과목을 수련하면 레지던트 수련기간 전부를 복무기간으로 인정해 필수과 선택을 유도한다.
제도의 성패는 선발 이후에 달려 있다. 외과의사 한 명을 배치해도 마취·간호 인력과 수술실, 중환자 치료체계가 없으면 수술은 어렵다. 당직을 나눌 동료와 적절한 보상, 지역에서 수련하고 경력을 이어갈 기회도 필요하다. 지역복무를 요구한 만큼, 국가와 의료계도 그 책임을 다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닥터X에서는 천재 의사가 막힌 수술실의 문을 연다. 현실에서 그 문을 여는 것은 제도의 힘이다. 지역의 수술실에 불이 꺼지지 않는 날, 하얀 가운은 다시 신뢰의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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