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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실용주의의 파산

2026-10-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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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논설위원

조진범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은 '먹사니즘'과 '실용주의'를 입버릇처럼 말한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탈이념, 탈진영, 탈정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우리의 방향"이라고 공언했다. 그럴듯했고, 국민적 기대도 컸다. 당시 국정 지지도가 60% 안팎에 달했다. 극심한 진영 대결에 지친 민심을 마법처럼 사로잡은 단어가 바로 실용주의였다.


지금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은 이 대통령이 공언한 '결실의 시간'과 거리가 멀다. 국민이 체감하는 밥상물가 안정이나 실질소득 개선은 보이지 않고, 상대를 죽일 듯이 몰아붙이는 정쟁(政爭)은 더욱 격해지고 있다.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외교'도 흔들리고 있다. 사실상 '실용주의의 파산'이다. 연초 대비 20%포인트나 급락해 40% 안팎에 갇힌 국정 지지도는 국민의 실망이 얼마나 깊은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돌이켜보면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여론의 온도계만 살피는 '기능적 적응주의'에 불과했다. 표심을 의식해 조세 정의와 복지 공약을 바꿨지만, 정작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의 고통 분담을 요구해야 하는 연금 개혁이나 노동 시장 이중구조 타파, 에너지 전환 같은 국가적 난제들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결정을 뒤로 미루고 있다.


국정을 대하는 잣대 역시 '선택적 유연함'에 머물러 있다. 경제 정책에서는 시장과 여론의 눈치를 보며 물러서면서, 권력기관 통제나 사법부를 향한 태도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중수청과 공소청을 만든 명분이 사정기관의 정치적 독립인데, 그 수장들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앉히겠다고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는 한술 더 뜬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2심 무죄 선고 이후 "사법개혁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며 법원을 겁박한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외교는 원칙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원칙 없는 줄타기를 벌이다 동맹의 신뢰를 잃더니,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북한군 포로 한국행 공개를 두고 대사 소환에 이어 공관원 철수라는 극단적 자존심 싸움까지 벌였다. 북한군 파병의 실전 전술 정보를 수집할 핵심 정보망을 스스로 끊고, 수백조 원 규모의 전후 재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좁히는 외교적 실책이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에서 터져 나온 '호남 몰빵' 논란도 실용주의적 합리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는 물론 대규모 국책 인프라 예산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여타 비수도권의 박탈감을 자극하고 있다. 산업적 연계성과 투자 효율성을 냉철히 따져야 할 국가 재정이 정치적 텃밭 결속과 선거 공학에 맞춘 '선택적 실용주의'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실용주의가 성공한 국정 철학으로 평가받으려면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와 자신의 지지 기반을 설득하며 국가적 난제를 정면 돌파하는 정치적 용기이다. 실제 한국 헌정사에서 실용주의는 늘 '고통스러운 결단'과 궤를 같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FTA 추진과 이라크 파병은 진영의 거센 반발에도 국가 생존을 위해 내린 결단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중도실용은 확고한 시장주의적 나침반 위에서 작동했다. 반면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에는 지향해야 할 가치도, 국가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철학적 닻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는 공허한 정치 구호로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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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대구경북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고민하는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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