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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時時刻刻)] 국민은 거리로, 정치는 권력투쟁으로

2026-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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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을이면 즐겨 찾던 곳이 학교 근처 룩상부르크 공원이었다. 노랗고 붉게 물든 플라타너스 아래로 햇살이 내려앉고, 잘 정돈된 화단과 연못 주변에는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뛰놀고 노인들은 벤치에 앉아 가을볕을 즐겼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파리 시민들의 모습에서 프랑스 사회의 풍족함을 느끼곤 했다.


20여 년 전 그 평화롭던 파리의 가을 풍경이 아직 눈에 선한데, 지금 프랑스는 평화롭던 일상이 흔들리고 큰 혼란에 빠져 있다. 거리에는 시위대가 몰려들고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생활비 상승과 공공서비스 악화에 대한 불만이 정치권을 향한 분노로 번지고 있다. 국민은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섰는데, 정치는 권력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위기가 하루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의 120%에 육박하는 국가채무와 만성적인 재정적자, 저성장과 정치적 양극화가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지만, 국민은 복지 확대와 생활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긴장 속에서도 프랑스 정치권은 타협이 아닌 정파적 대립에만 매몰되어 있다. 눈앞의 인기를 위해 시급한 개혁을 외면한 포퓰리즘과 권력투쟁이 국가의 위기를 더 키운 셈이다.


지금의 프랑스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나라가 겹쳐 보이는 것은 과연 지나친 기우일까.


한국 역시 국가적 중대 과제들이 정치권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저출생과 고령화, 지역의 의사 부족과 청년 유출, 지역 경제의 침체 회복, 산업구조 전환과 재정 지속 가능성 확보 등의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 역시 구조개혁에 대한 합의보다 상대 진영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지지층 결집에만 힘을 빼고 있다. 국민은 오늘의 생계를 걱정하는데, 정치권은 내일의 권력만 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의 위기는 민생을 돌보지 않는 정치의 실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정치가 국민의 불만을 제도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은 거리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선거 이후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조정하고 반대하는 국민까지 설득하며, 미래를 위한 개혁을 추진할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이 유지된다.


파리 룩상부르크공원과 루브르박물관에서 느꼈던 평화와 여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었다. 국민이 자신의 일상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사회적 신뢰의 모습이었다. 오늘날 프랑스의 혼란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우리나라가 그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수출이 늘고 세수가 회복되더라도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고 지방의 청년들이 고향을 떠난다면, 그것은 균형적인 성장이라 할 수 없다. 국가의 곳간이 채워진다고 나라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지방의 미래가 비어간다면 그 나라는 결코 온전히 부강하다고 할 수 없다.


프랑스 길거리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국민의 삶을 외면한 정치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권력을 차지하는 데 있지 않다. 바로 국민의 평온한 일상을 지키고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다.


국민이 거리로 나서기 전에 정치가 먼저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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