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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천일영화] 저예산이라는 가상현실에서 잃어버린 것들, ‘실낙원’

2026-10-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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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실낙원'은 아들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도입한다는 점, 진짜 아들이 귀환함으로써 가정의 균열이 시작된다는 점 등에서 25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했던 'A.I'와 조응한다. 'A.I'에서는 부모가 인간 아들을 선택하고 AI를 유기하기로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유전자를 공유한 친아들과 기계를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는 버림받은 AI가 인간이 되고자 감행하는 지난한 모험을 따라간다. 반면, '실낙원'의 서사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이 실종된 후, 9년이란 시간 동안 AI와 밀착되어 있던 '소영'(김현주)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스필버그가 모정을 갈구하는 AI를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피조물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연상호는 무해한 AI 아들과 유해한 인간 아들을 대비시키면서 부모의 선택을 묻는다. 가상과 실재 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치관의 혼란, 스릴러 장르의 차용 등은 흥미롭지만, '실낙원'에는 비약적인 서사를 지탱해 줄 영화적 장치들이 부족하다. 영화가 요구하는 정서적 몰입감을 뒷받침해 줄 시각적 연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 인류가 경험하는 인공지능이 일상을 보조하는 도구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반면, 소영이 '낙원의 아이들' 프로그램 속 '선우'(이하 'AI선우')에게 느끼는 감정은 신앙이라 할 만큼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소영은 9년 동안 열 살 소년의 모습에서 한 치도 자라지 않은 선우가 실재하는 것처럼 매일 대화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이는 자식을 잃은 부모가 가상현실을 통해 위로받고, 슬픔을 달랜다는 설정이 지닌 보편적 공감대를 넘어선다. 소영에게 '낙원의 아이들'이나 AI선우는 그리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존재가 아니라 그녀를 퇴행시키고 고립시키는 존재에 가깝다. 그래서 진짜 아들이 살아 돌아왔을 때, 소영이 느끼는 당혹감은 단순히 훌쩍 커 버린 아들의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생경함과 다르다. 처음부터 그녀는 성인이 된 아들을 반가워하기보다 두려워하고, 이제는 사실상 필요가 없어진 AI선우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여기서 영화는 정든 가짜 아들과 낯선 진짜 아들 사이에 있어야 할 소영의 딜레마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다.


또한, 어느 날 불쑥 소영(과 AI선우)의 공간에 침입한 이방인으로서의 선우가 세련된 서스펜스를 유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선우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섬뜩한 눈빛과 폭력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철저히 악인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처럼 진짜 아들을 극단적이고, 일차원적인 캐릭터로 만듦으로써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낙원의 아이들과 AI선우의 안타까움을 부각시킨 것은 편의주의적인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심리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5억 원이라는 저예산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인공지능의 시대와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설득력을 요구한다. 훌륭한 미장센은 그 자체로 영화의 매혹적 요소가 될 뿐 아니라 서사와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근미래라는 시간적 배경에 필요한 기본적인 미장센을 도외시한 채, 그럴듯한 로그라인 한 줄로만 100분을 채우기에 관객들의 눈은 높아져 있다. 기존 영화산업의 투자 구조와 자본의 논리를 탈피하고자 한 시도에는 의미가 있으나 그것은 저예산에 적절한 기획이었을 때 빛을 발한다. 자본의 한계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영화에서는 그만큼 완성도를 떨어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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