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 시금치, 포항에선 포항초
작년 10월20일 포항초 첫 출하 4월말까지 생산
포항 칠포 해수욕장 옆 곡강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포항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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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춘(冬中春)의 견인차 포항초
매화와 산수유 꽃망울은 아직 묵언(默言).
동장군 없는 정해년 겨울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국내 배추의 80%가 생산되는 해남군 산이면 300여만 평 들녘의 배추도 꽃처럼 피어 있습니다. 포항시 대보면 구만리 들에는 보리싹이 잔디처럼 깔려 있습니다. 호남에선 그 싹으로 국을 끓여먹는다죠.
음식의 출발점은 땅과 바다. 특히 땅 위의 먹거리의 원천은 꽃입니다. 무화과는 꽃이 없다지만 모든 식물은 꽃을 남깁니다. 식물도 이승과 저승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퓨즈처럼 걸린 게 꽃입니다. 꽃이 돋지 않으면 삶에도 먹구름이 밀려들고, 꽃이 탄력을 받으면 먹거리도 탄력을 받습니다. 지금 우리는 '진검' 같은 음식을 만나기 힘듭니다. 심산유곡에도 산성비가 내립니다. 소스가 식재료의 진미를 가려버립니다. 그 날카롭던 미뢰의 날도 화학조미료 때문에 무뎌져버렸습니다. 광고 속 음식은 청정해 보이지만 대량유통되는 먹거리는 흠투성이입니다. 뺏긴'식주권(食主權)'을 되찾을 때입니다.
디지털 공화국, 사람들은 개화(開花)의 현장을 목격할 겨를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화신을 전하는 꽃은 제주도 한림공원 내 복수초와 수선화, 오는 3월4일쯤 개화할 예정입니다. 매년 음력 1월15일쯤 두 꽃이 핍니다. 둘이 피면 '한국의 봄'도 본격 발진됩니다. 이때 사진작가들은 우르르 한림공원으로 달려갑니다. 얼음을 방석처럼 깔고 앉은 복수초 향기, 제주도발 해풍을 타고 한반도로 날아들 겁니다. 여수 오동도(동백)·구례군 산동마을(산수유)·전남 광양군(매화마을) 등에 '꽃등'이 켜지면 본격적으로 '정해년 화신(花信) 릴레이'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먼저 푸른 자태로 '동중춘(冬中春)'을 펼쳐보이는 채소가 있습니다.'포항초'입니다.
#곡강마을은 포항초 마을로 발전하고
사람들은 포항초가 뭔지 잘 모릅니다. '월동 시금치'를 포항시 흥해읍 곡강마을에선 '포항초'라 부릅니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선 '섬초'라고 하죠. 물론 포항초와 섬초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나물입니다. 해풍을 받은 채소는 야무지고 향기가 강합니다. 이맘때 출하되는 제주산 당근도 육지것보다 더 튼실합니다. 어른 손바닥만한 이놈들은 하우스보다 덜 푸르지만 뿌리는 더 붉습니다.
포항초 신화는 곡강2리(현재 73가구가 재배)에서 발흥됩니다. '포항초 붐'의 주인공은 이등일 곡강시금치 작목반장(63). 그가 15년 전쯤 농부들의 '놀자판 농한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포항초를 끌고 왔습니다. 칠포해수욕장 인근 해안 야트막한 야산이 포항초 동산으로 변해갔습니다.
이곳은 호미곶 인근 대보면 구만2리 근처의 보리밭과 함께 겨울 속 녹색 포항을 연출하는 명소입니다. 눈이 내리면 정말 장관입니다. 흰색과 녹색의 극명한 대비, 그래서 이 들판은 사진촬영장소로도 인기가 좋습니다. 포항초가 서울권에서 잘 팔리자 재배지가 곡강3리, 곡강1리, 용한1리, 남구 청림동 도구마을 등지로 퍼져나갑니다. 작년 10월20일 첫 포항초가 출하, 오는 4월말까지 팔린답니다. 300g 한 단에 800원선. 상당 물량이 서울로 올라갑니다. 지역의 경우 e마트에서 많이 팔립니다. 흥해농협(054)261-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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