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눈으로 모든 것을 살피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살피는 것의 한계는 눈에 걸맞은 모양과 색깔이며, 듣는 것의 한계는 오직 귀에 걸맞은 소리일 뿐이다. 너무나 큰 것도 볼 수 없고, 너무나 큰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 작은 것도 볼 수 없고, 너무나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즉 감각기관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은 그 기관이 지니는 한계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모양에 대하여 거리상 너무 먼 것의 한계를 일러 ‘太’(클 태)라 하고, 어떤 색깔에 대하여 너무나 멀기 때문에 잘 구분할 수 없는 것을 일러 ‘玄’(가물 현)이라 한다. 따라서 이 두 글자를 합쳐 ‘太玄’이라고 하면 눈의 한계를 벗어난, 즉 인간의 인식 밖을 뜻한다. 우주 만유의 형형색색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최종적으로 거슬러 올라간 그 끝은 인식의 한계를 벗어난 너무도 멀고도 아득한 것이기 때문에 모양으로 치면 ‘太’라 말할 수 있고, 색깔로 말하자면 ‘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어떤 화가가 말 100마리를 그린 그림을 전시장에 걸어놓고 많은 관람객의 평을 얻고자 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두려운 일은 자신의 스승인 화백 제백석의 평가였다. 그런데 스승이 와서 작품을 관람한 뒤 아무런 평도 없이 방명록에 점 하나를 찍고 갔다 한다. 이 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본 화가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무릎을 치며 “그러면 그렇지”라고 스승이 점 하나만 친 뜻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가 그린 백마도 안에는 흰말도 있고, 검정말도 있고, 큰 말도 있고, 새끼 말도 있고, 뛰는 말도 있고, 서 있는 말도 있었다. 이런 각양각색의 말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려면 그 말을 발길로 세게 차서 돌려보내면 각자가 온 자리로 달아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말이 내 눈에서 멀리 사라져버릴 때 최후의 모양이나 색깔은 어떤 것인가 잘 생각해 보면 그저 가물가물하다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되돌려 생각해보면 가버리는 자리가 곧 왔던 자리라, 급기야 형형색색의 근본자리는 ‘玄’이다. 즉 ‘玄’이란 들어갈수록 작아진다는 뜻에서 ‘入’(들 입)에 ‘’(작을 요)를 상하로 붙인 글자다. 여기에서 ‘’는 ‘絲’(실 사)가 매듭을 지어놓은 기다란 실인데 반하며 매듭을 지을 수 없는 작은 실이라는 뜻에서 ‘작다’를 의미한다.
아득히 멀어서 가물가물한 그 색상은 흰색이 아니라, 눈의 초점을 몽땅 모아 바라봄으로써 아득히 먼 데서 겨우 얻어지는 색이기 때문에 자연히 검은색 정도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물가물하다는 말은 속이 너무나 깊어 감감하다는 뜻과 통해 ‘검을 현’이라도 한다. 즉 우주 만유의 크고 작은 형형색색들은 하나같이 저 먼 곳에서 왔다가 저 먼 곳으로 되돌아간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여 “玄之又玄”이라고 노자는 말하였다. 또 일찍부터 ‘하늘은 가물가물하고, 땅은 누렇다(天地玄黃)’<천자문>고 일렀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산이 깊으면 자연히 골짜기도 깊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산유곡’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幽’(그윽할 유) 또한 골짜기를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깊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그 골짜기가 가물가물하여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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