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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 속 가을 카페 삼덕상회 2층 창을 열면 북성로 은행잎 노랗게 뒹군다

2012-11-02

◆ 사색의 공간이 필요하다면…공구골목 ‘삼덕상회’

대구 도심 속 가을   카페 삼덕상회 2층 창을 열면 북성로 은행잎 노랗게 뒹군다
삼덕상회 입구. 일제강점기 유행가 ‘땅콩주택’ 스타일.사진=이춘호·박진관기자
대구 도심 속 가을   카페 삼덕상회 2층 창을 열면 북성로 은행잎 노랗게 뒹군다
삼덕상회 2층 실내 전경.사진=이춘호·박진관기자
대구 도심 속 가을   카페 삼덕상회 2층 창을 열면 북성로 은행잎 노랗게 뒹군다
화가 천광호씨가 삼덕상회 2층에서 가을을 음미하고 있다. 사진=이춘호·박진관기자



북성로 공구골목은 사철 ‘빙하기’ 같다. 그런데 지난해 10월27일 이 거리에 ‘풀씨’ 하나가 떨어졌다. 가을 같은 카페, ‘삼덕상회’다. 기자가 찾은 날이 바로 개업일이다.

문 앞에 팬시용 우체통이 놓여 있다. 유치환의 시 ‘행복’에 등장하는 그 우체국이 생각났다. 갑자기 카페 안에서 ‘내게 보내는 편지’를 적고 싶다. 그러면 중앙우체국 우편배달부가 배달해줄 것 같았다.

입구는 모두 4개의 장방형 유리창문으로 짜여 있다.

안은 무척 좁다. 그런데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매력을 갖고 있다. 창조적 직군에 있는 사람이 들끓는다. 손님을 다 받아봐야 채 일곱 테이블밖에 안된다. 둘이 오기보다 혼자 오는 게 더 어울린다. 사유의 행간이 풍성하기 때문.

나무 궤짝에 담긴 장미허브와 사랑초가 입구에 놓여 있다. 옆집은 보수 중이다. 반세기 전 골조가 으스스하게 드러나 있다. 그래도 흉물스럽지 않다. 곧 건축사무실로 개조될 모양이다. 좌우 집이 모양이 같다. 이 집은 일명 ‘땅콩주택’. 일제 때 지어질 때는 모두 4토막의 공동주거 ‘장옥(長屋)’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곳의 지킴이인 최지애씨는 흉가 같은 이곳을 개조할 때 가능한 한 원형을 유지했다.

2층으로 연결되는 곳은 유리창으로 가려놓았다. 그래서 2층에 올라가면 아래 모습이 훤히 보인다. 툇마루도 떼어내지 않고 의자로 활용했다. 입구 문지방 부위에 그 시절 쇠로 된 상호가 그대로 붙어있다.

1층에는 테이블이 4개밖에 없다. 불과 서너평 정도의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꼭 어른 손바닥만 하다. 그 옆에 2층으로 향하는 10개의 철계단이 있다.

1층과 달리 2층은 방부목으로 된 테라스가 있고, 안에 옥탑방 같은 다다미방이 숨겨져 있다. 운이 좋아야 거기에 앉을 수 있다. 다다미 질감도 좋고 가로 70㎝ 세로 70㎝ 크기의 유리창문 2개를 열어젖히면 동서로 이어진 북성로의 가을정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칙칙한 거리에 굴러다니는 샛노란 은행잎이 꼭 ‘별똥별’ 같다. 은행잎을 주운 날을 명기해 2012년 마지막 은행잎을 코팅해서 벽에 전시해놓으면 두고두고 훈훈한 얘깃거리가 될 것 같다.

2층에 서면 하늘은 일망무제로 부푼다.

비가 새는 걸 막기 위해 덮었던 천막을 눌러뒀던 폐타이어 10개도 이 카페에선 재산목록에 들어간다. 지붕 양편으로 은행나무가 용마루같이 솟아있다. 지역의 모 대학에 다니는 김유진양이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다. “이만 한 가을이 어딨냐”면서 여길 칭찬한다.

더욱 흥미로운 손님도 만났다. 올해 18세인 홍나희·문선영양. 친구 사이인 둘은 인터넷을 통해 이 공간을 알았다.

“서울발 공룡 커피숍은 너무 시끄럽고 제정신을 못 차리게 하지만, 이곳은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 일제 때 건축구조까지 접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생각해요.”

요즘 대구근대골목과 사랑에 빠져 있는 가을남자 천광호씨.

그가 동행취재를 위해 가을 바바리를 멋지게 차려 입었다. 스케치북도 갖고 왔다. 그는 12월20일부터 봉산문화거리 ‘갤러리 오늘’에서 스케치전을 연다. 이미 이상화 고택 옆 지난 4월 오픈한 대구근대골목 관광정보관 구실을 하는 계산예가 등 12곳의 풍광을 그림엽서로 발간하기도 했다. 그가 다다미방에서 센티한 표정을 지으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무채색 계열의 사장들은 이구동성으로 ‘뭐 이런 카페가 다 있노’라면서 다들 생뚱맞게 여겼다. 하지만 카페와 상회란 말이 묘한 울림을 준다. 그게 입소문의 원천. 집 앞엔 각종 공구로 만든 공룡이 서 있다.

삼덕상회는 이제 철물점 아저씨들에겐 ‘동요’ 같은 존재. 근처 태양·황해 다방의 달디단 촌커피에 길들여진 사장들은 어쩌다 여기 원두커피를 맛보곤 머쓱해 한다. 터줏대감 구실을 하는 삼양베어링 사장은 애처롭게 피어있는 이 카페를 위해 부러 촌다방 두고 여길 들러 격려금까지 주고 간다. 가끔 지금 살고 있는 집과 구조가 비슷하다면서 2층 다다미방에서 2시간씩 아련한 시간을 즐기고 가는 70대 노신사도 있다.

카페가 단풍 수만개 이상의 위력을 내기 때문에 굳이 단풍나무가 필요없을 듯하다. 스산한 추풍 탓인지 삼덕상회가 모닥불 같은 온기를 발산한다.

이 거리엔 이상하게 가로수가 거의 없다. 예전에는 은행나무가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마구 베어졌다. 이젠 딱 5그루만 남았다. 그 중 3그루가 신기하게 삼덕상회 앞에 장승처럼 서 있다.

바람 한 줄기에 수십개의 은행잎이 우수수 진다. 겨울 은행잎이 다 사라진다 해도 괜찮다. 삼덕상회가 연중무휴 가을톤의 기운을 공급해줄테니. (053)253-2951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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