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탄생 100주년이다. 46세로 사망한 카뮈는 ‘이방인’ ‘페스트’와 같은 명작 소설과 함께 ‘오해’ ‘칼리굴라’와 같은 의미 있는 희곡도 남겼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는 광기 어린 폭정을 하다가 28세 때 근위병에 의해 시해된 인물인데, 그의 생애에 대해 많은 이들이 흥미를 갖고 묘사했다. 틴토 브라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칼리굴라’는 감독 특유의 에로틱한 표현이 도를 넘어 하드코어 수준에 이른다. 그러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007)을 수상한 헬렌 미렌을 비롯하여 피터 오툴, 말콤 맥도웰 등 명배우들이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희곡 ‘칼리굴라’는 폭군의 잔인함 뒤에 숨어 있는 선과 악의 경계, 근친관계였던 사랑하는 누이 드루실라의 죽음에 대한 고통, 신이고자 했던 인간의 불가능에 대한 도전, 그러나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 등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묘사한 것이다.
캐나다 퀘벡지역의 극단 ‘테르 데 좀므’(Terre des Hommes·인간의 대지)는 ‘칼리굴라’를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했다. 즉, 주인공이 합창단의 지휘자처럼 손짓으로 다른 출연진의 연기를 지휘하면서 솔로 또는 그룹으로 각종 성대 모사와 대사를 쉴 새 없이 뱉어내게 한다. 심지어 캐릭터들의 성행위 모습이나 칼로 죽이고 죽는 장면들도 모두 배우들이 앉은 자리에서 소리로만 표현하는 것이다. 파격적인 변형이다.
그래서 음악에서 형식을 바꾸어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리믹스’(Remix)라는 단어를 차용해 ‘칼리굴라 리믹스’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캐나다 아트마켓(CINAR)에서 발표한 것이다. 각색, 주인공, 연출은 3인의 극단창단 멤버 중의 한 명인 마르크 보프레가 맡았다. 관객들의 평가는 “신선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아니다, 너무 파격적이고 어렵다"로 양분됐다. 그러나 적어도 상업적으로는 성공한 듯하다.
지난 4일, 의정부시에서 개최된 국제음악극축제에서 개막작으로 바로 이 테르 데 좀므극단이 초청돼 칼리굴라 리믹스를 공연했다. 무대는 거대한 라디오 스튜디오 같고, 콘솔이 놓여 있었다. 삼각형 무대 좌우 4명의 배우 앞에는 마이크가 놓여 있었으며, 관객 뒤로 칼리굴라역을 맡은 주인공이 다른 출연자들을 열정적으로 지휘하고 있었다. 극단은 출연진 소개를 배우라고 하지 않고 합창단원이라고 불렀다.
19금으로 분류돼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가 극 시작 전 이에 대한 해명을 했다. 또 프랑스 작가의 프랑스어 무대를 함께 축하하기 위해 프랑스문화원에서는 한글번역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용복씨의 한글번역은 무난한 듯하나 창작보다 어렵다는 번역의 고충을 보이기도 했다. 프랑스어 원문에서는 신하들이 황제를 ‘가이우스’라 부르고, 높임말을 쓰는 대신 낮춤말을 쓴다. 한글자막에서는 황제에게 “당신이 이러저러하지 않았소”라는 등 어중간한 말을 쓴다.
칼리굴라의 본명은 가이우스 줄리우스 케사르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이다. 칼리굴라라는 이름은 ‘작은 군화’라는 뜻인데,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 마르쿠스 장군의 병영에서 로마 군인들의 군화인 칼리가(Caliga)를 신고 놀았기에 병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귀여운 소년이 무서운 성인으로 변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한 속성이다. 그런데 ‘테르 데 좀므’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아동구호단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선한 일을 하는 성인도 많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선과 악의 편에 설 수 있다. 극단은 1900년에 태어나 카뮈와 비슷한 연령을 살다가 간 또 다른 프랑스 작가 생택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 즉, ‘테르 데 좀므’에서 이름을 땄다. 이날 의정부시 ‘예술의 전당’을 가득 채운 관객은 전혀 새로운 형식의 연극(혹은 음악극)을 공연한 캐나다인에게 아낌 없는 갈채를 보냈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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