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웃는다, 작은 행복에 기뻐하는 춘심이처럼
부족한 듯 친근한 춘심이 연작 인기
“가장 행복한 순간은?” 많은 질문 끝에
마냥 사랑스러운 여성의 표정 완성
자연 안에서 행복… 작품의 색 밝아져
![[전원 속 예술가들 57. 끝] 이철진 화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2/20140218.010240802500001i1.jpg) |
이철진 화가가 최근작인 ‘행복한 여자 춘심이’ 연작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작품 속 춘심이의 눈매와 작가의 눈매가 많이 닮았다. 이지용 기자 sajahu@yeongnam.com |
![[전원 속 예술가들 57. 끝] 이철진 화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2/20140218.010240802500001i2.jpg) |
이철진 화가가 마을 길을 걷고 있다. |
![[전원 속 예술가들 57. 끝] 이철진 화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2/20140218.010240802500001i3.jpg) |
이 화가는 작업을 하다가 수시로 전자기타를 친다. |
![[전원 속 예술가들 57. 끝] 이철진 화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02/20140218.010240802500001i4.jpg) |
최근작인 ‘행복한 여자 춘심이’ 연작. |
1963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동양화과와 동대학원 미술교육전공을 졸업했다. 경북도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대구시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에서 입상했다. 94년 대구 봉성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미국 뉴욕, 대구, 서울, 부산 등에서 28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영남대, 대구예술대, 부산예술문화대 등의 강사로 활동했으며 대구시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냈다. 현재 포항예술고 교사로 있다.
이철진 화가는 지난해 대구, 서울, 부산 등에서 네 번의 초대전을 열고 홍콩아트페어, 부산아트쇼 등 국내외 아트페어에도 여섯 차례나 초대받아 전시를 개최했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였다. 그래서 올해는 개인전을 열지 않을 생각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터라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올해는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면서 여유를 가져보겠다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고민은 결국 좋은 작품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이런 호흡 조절능력이 이철진만의 그림을 만들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에게 이처럼 초대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잘나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경기침체로 미술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요즘 화랑들이 그를 계속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연작 ‘행복한 여자 춘심이’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을 보면 사람들이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고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 이유를 분석한다. 그가 2~3년 전부터 선보이고 있는 이 시리즈는 춘심이라는 인물을 내세우지만 그 속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행복이다. 누구나 찾기를 원하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은 행복 말이다. 그는 이를 그림을 통해 감상자들에게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인 춘심이는 아름답다거나 예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터질 듯한 두 볼에 통통한 몸매를 지닌 춘심이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약간 촌스러운 여자처럼 보인다. 결코 완벽한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난이도 아니다. 촌스럽지만 그 속에 나름의 귀여움이 있다.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춘심이를 보면서 사람들이 행복한 느낌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녀의 웃음 때문이다. 발그레한 볼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게 웃고 있는 눈매가 어린아이처럼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 작가는 “사람들이 춘심이를 보면 즐거워지기 때문에 결국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다. 춘심이는 약간 어눌해보이지만 우리 시대의 건강한 여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약간 부족한 듯한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것은 물론,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에게 이처럼 정겨움을 주는 춘심이는 그의 포항 작업실 안에 가득했다. 그의 작업실을 찾은 날은 눈과 비가 섞여 쏟아졌는데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봄볕이 가득한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활짝 웃으며 손님을 반기는 많은 춘심이들 덕분이다.
포항이라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바닷가에 작업실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찾은 그의 작업실은 산촌마을을 연상시키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들판이 펼쳐진 시골길을 10분 이상 달리고 산길을 족히 1㎞ 이상 들어가서 마주했는데 그의 작업실 주위에는 과수원이 많았다.
“이곳에는 봄이나 여름에 와야 되는데…. 사방이 과수원에다 산이다 보니 사시사철 아름답지 않은 때가 없지만 사과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가 특히 좋지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위를 둘러보니 키가 자그마한 나무가 가득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과나무였다. “포항 기북면 사과는 전국적으로 알아줍니다. 맛도 좋거니와 친환경으로 재배돼 최상품으로 인정받지요.”
영남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2000년 포항예술고 교사로 왔다. 그전에는 대구에서 활동했는데, 직장을 얻어오면서 포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다시 작업에 매달린 그는 2004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위해 전원으로 눈을 돌렸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그는 이곳이 포항에 있지만 산골분위기가 나서 좋았다. 대구에 있을 때는 상대온천 부근에 작업실을 뒀는데, 이곳이 예전의 작업실 환경과 분위기가 비슷했던 것이다.
“조용한 데다 직장에서도 20분 정도 거리밖에 안 되니 작업실만이 아니라 휴식공간으로서도 요긴합니다. 그림도 그리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사과나무, 산 등을 보면서 작업구상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지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실에는 전자기타, 헬스기구 등이 작업실 중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작업실에 그림과 그림도구들만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일반 작가들과의 그것과는 약간은 다른 풍경이다. 술을 잘 먹지 못한다는 그는 작업에 지칠 때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곳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주위에 과수원만 있으니 아무리 소리쳐 노래를 불러도 피해를 줄 염려가 없다.
이처럼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를 보니 그림 속 춘심이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작가인데도 그림 속 여자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늘 웃음을 얼굴 가득 간직한 작가의 눈매가 그림 속 춘심이의 웃는 눈과 특히나 비슷한 듯했다.
어찌 보면 세상 고민 하나 없는 듯 웃고 있는 춘심이의 모습을 작가가 그냥 그린 듯하지만, 이 표정은 작가가 여러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위해 주변의 많은 지인을 설문조사했다.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지 물었더니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을 보며 웃고 있을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릴 때,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 때, 운동을 할 때 등의 답이 나왔지요. 이런 행복함 속에서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면 무엇을 꼭 해보고 싶으냐는 질문도 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등 예술인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그림 속 춘심이가 악기 연주하는 모습이 많지요.”
그는 이런 조사를 통해 우리 시대 여성들은 그다지 높은 이상이나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한 일상 속의 사소함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이 말끝에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유도 설명했다.
춘심이는 우리 시대의 여성으로, 곧 어머니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 가정의 어머니가 행복해야 남편과 아이, 즉 가족 모두가 행복해진다. 여성의 행복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가정,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에 행복의 바이러스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이 작가는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누드가 많았다. 그리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사실화 성격이 강했다. 색조는 수묵처럼 깊고 어두운 느낌이 강했다. 작가 스스로도 이런 수묵 느낌의 색을 사용하는 것이 한국화를 전공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실화에서 벗어나고 색도 밝고 맑아졌다. 그리고 얼굴에 웃음이 생겨났다. 이런 변화는 자신이 행복해졌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가 행복해진 이유가 궁금했다.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데 말이다. 그의 행복은 마음의 평화에서 비롯됐다.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니 정신적 여유가 생기고 이것이 결국 행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예술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여유를 찾은 것은 그림과 자연을 통해서였으며, 특히 자연 속에서 작업을 하면서 자연에 동화되는 삶으로 변해갔다. 자연과 동화된 삶은 욕심이 없다. 욕심이 없으니 세상 모든 일에서 바쁘고 복잡할 일이 없다. 이것이 결국 행복한 여자 춘심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인터뷰 말미쯤 되니 그와 춘심이가 진짜 닮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춘심이의 얼굴에 작가의 마음이 스며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춘심이와 이 작가의 웃음 가득한 얼굴에서 기자도 절로 행복해지는 듯한 소중한 경험을 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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