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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통기타와 무한열정’ 언더그라운드 포크가수 3人

2014-09-19

대중의 인기보다 소수 마니아를 위해…그래서 ‘자유로운 영혼’

싱어송라이터.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이런저런 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노랫말을 짓고 멜로디를 붙인 뒤 자기가 직접 부른다는 건 보통 재능이 아니다.

1990년을 넘어서면서 한국 싱어송라이터를 업은 포크음악은 퇴조를 한다.

시인과 촌장, 조동진, 신촌블루스와 들국화의 전인권 등이 줄줄이 자취를 감춘다. 93년발 ‘서태지 돌풍’이 그 위를 덮는다. 다행히 전국 소극장 투어를 성공시킨 김광석은 혼자 대한민국 포크정신을 수호했다. 하지만 김광석처럼 알려지는 것도 거부하면서 오직 석간수처럼 지금까지 소수의 마니아를 열광시키는 은둔의 음유시인이 있다.

대표적 가인이 김두수·이성원·윤영배. 김두수와 윤영배는 대구 출신으로 현재 군산과 제주도에 각각 살고 있다. 김두수와 이성원은 80년대 곽성삼과 함께 국내 최고의 언더그라운드 포크가수였다.


●10여년을 잠적한 김두수

20140919



김두수(55).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 음유시인.

그의 존재감을 알린 1991년 작 ‘보헤미안’. 북극의 오로라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가을 연못의 물살처럼 너무나 가녀린 그의 목소리는 분명 ‘치명적’인 구석이 있었다. 부산의 한 광팬이 그의 노래를 듣고 자살을 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자살을 포기했다는 사연을 김두수에게 보낸 팬도 있다. 음유시인 1호인 조동진도 인정했던 그는 자기 곡이 너무 극단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그도 충격을 받는다. 아내와 함께 강원도 대관령 근처 산골로 10여년 잠적을 한다.

59년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서 태어난 그는 은행원인 아버지 지재형과 중학교 교사였던 모친 김미성 사이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다. 야구명문인 삼덕초를 나와 오성중·능인고를 거쳐 78년 경북대에 진학하지만 이내 자퇴한다. 재차 81년 고려대 농경제학과에 입학한다. 그때부터 기행의 연속이었다. 삿갓에 고무신을 신고 전국을 떠돈다. 가야산의 한 암자를 찾았고 근처 바위에서 심야 대금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82년 상경한 그는 생계를 위해 명동의 PJ살롱, 쉘부르 등에서 통기타 가수가 된다. 본명은 지서종이었지만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천하악당 ‘김두수’가 맘에 들어 예명으로 품는다. 86년에 서울 장충동에 있었던 킹 프로덕션에서 첫 음반을 제작한다. 그의 노래를 듣던 신중현이 그를 격려하기 위해 마틴 기타를 선물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국내 뮤지션 중 모든 정규앨범을 아날로그 LP음반으로 발표한 유일한 아티스트. 86년부터 5년간 3장의 음반을 냈고 그중 ‘꽃묘’ ‘귀촉도’ ‘약속의 땅’ ‘보헤미안’ 등은 음악 마이아들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88년 2집 ‘약속의 땅’을 발매할 때 경추결핵이라는 병에 걸려 생사를 헤매는 투병을 하다 기적적으로 낫는다. 너무나 음악적이라서 오히려 가요계에선 그의 존재가 철저히 무시되고 간과된다. 1집은 그의 앨범 중 가장 희귀한 음반이고 2002년 발표한 4집 ‘자유혼’은 네티즌들에 의해 ‘올해의 국내 대중음악 최고음반’과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경기도 양평에 조금 살다가 현재는 군산 도심에서 10㎞ 떨어진 낡은 파란색 양철지붕집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이효리의 음악 멘토 윤영배

20140919



지난 2월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예스24 무브홀.

이날 제주도에 은거 중인 가수 윤영배(46)가 엄청난 상을 받는다. 그는 제11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2013년 발매한 3집 ‘위험한 세계’로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을 받으며 3관왕에 오른다. 이날 ‘바운스’로 선풍을 일으킨 가수 조용필은 2관왕을 차지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대중가요와 인디신을 통해 발표된 곡과 앨범을 아우르는 시상식으로 특정 곡의 흥행과 경제적 성과 외에 완성도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대구에서 태어났고 영남대 캠퍼스 밴드 ‘에코스’ 출신인 그는 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뒤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팬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 ‘신비주의 가수’로 통했다. 시대정신이 유별난 그는 기타 하나만 달랑 들고 그간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해방촌 빈집, 홍대 칼국숫집 두리반 등지에서 소규모로 공연한 대표적 ‘작가주의 뮤지션’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상순의 부인인 가수 이효리가 출연하는 온스타일 ‘이효리의 X언니’에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이효리는 그의 음악적 멘토가 바로 윤영배임을 밝힌 바 있다. 역시 제주로 옮겨 살고 있는 가수 장필순의 음반 작업도 매니지먼트했다.

그는 시대저항적이다.

여느 은둔파와 달리 주요 신문을 매일 아침 꼼꼼하게 챙긴다. 현재 녹색당 당원이자,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 지난 5월13일 공개된 녹색당 당가 제작도 그가 주도했다. 정치집단의 행사용 당가가 아니라 녹색의 정서를 담았다.

직접 머리카락을 다듬어 ‘이발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시장에 예속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직접 자른단다. 그는 “승자독식은 잘난 놈이 다 먹고, 60~70%의 의견은 없어져 버리는 체제이다. 이를 극복하고 진짜 민의를 반영하는 것을 실현하는 정치 집단으로, 지금은 녹색당밖에 없다”고 믿는다.


●어른 위한 동요 부르는 이성원

20140919


61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엔 갖기 어려웠던 전축을 갖춰놓고 재즈 등 흑인 음악을 즐기고 노래자랑대회에서 입상했을 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하지만 부친이 황달과 고혈압으로 일찍 세상을 등지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진해상고 3학년 때 친구 집에서 우연히 접한 통기타소리는 답답한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졸업 후 신문·우유배달과 가구점 일꾼으로 전전했다.

81년 해태유업에서 전국의 직원을 대상으로 장기자랑대회를 열자 노래로 1등을 해 상금으로 빚진 우유 값을 갚고 나왔다. 이후 세광전지의 지점에 사무직으로 취직해 1년간 근무했다. 이후 음악적 방향도 없이 그저 노래가 부르고 싶은 마음에 카페들을 방랑하며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국 청운의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한다. DJ 이종환이 운영하는 명동 쉘부르의 노래경연대회에 참가했지만 떨어졌다. 이후 이화여대 정문 앞에 ‘쉼표’라는 카페를 열었다. 배우 명계남 등 신촌 쪽에서 놀던 연예인들이 드나들었다. 당시 김민기·한대수·송창식·양희은의 전곡을 맹연습했다. 김민기 곡 ‘밤뱃노래’ 속의 전통가락이나 특히 ‘진주난봉가’의 구수한 우리 가락에 감전된다.

85년 산에서 추락상을 당해 고생을 했고 86년부터 정기적인 개인콘서트를 신촌 크리스탈 문화센터에서 연다. 87년 데뷔음반 ‘문을 열고 나서니·아세아 음반’으로 인기가수 대열에 선다. 이후 상업적인 음악활동과는 거리를 두며 창작 무용곡에도 빠져든다. 89년 첫 국악 가요 발표회 이후 91년 2집 ‘나무밑에서·서울음반’ 때 이정선이 편곡, 김두수는 기타 세션으로 동참한다. 그는 이후 철저히 공중파 뮤직프로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마구간만하지만 별빛 같은 울림이 있는 공연장만 딛고 다닌다.

그는 사석에서 동요를 애창한다. ‘엄마야 누나야’ 등이 수록된 99년 첫 동요음반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도 어느 조촐한 자리에서 그의 동요에 감격한 사람들이 맘을 모아 만들어 줬다. 두 번째 동요집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도 펴냈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청안향교 근처로 거처를 옮긴 그는 틈만 나면 시골학교 음악회 같은 동요공연을 기획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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