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9월)
‘대구 10월항쟁’ 이후 68년째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빨갱이 아들’비난 속 연좌제 씌울까 입밖에 못내
노근리 사건 재조명에 용기 10년전 첫 유해발굴 나서
![]() |
| 3일 대구시 동구 용수동의 한 식당에서 ‘한국전쟁 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의 나정태 부회장(왼쪽)과 ‘10월 항쟁유족회’의 채영희 회장이 ‘대구 10월항쟁’ 관련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위해서 끝까지 활동할 계획입니다.”
1946년 10월2일. ‘한국전쟁 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의 나정태 부회장(68)의 부친인 나윤상씨(당시 26세)는 ‘미군정은 빼앗아간 쌀을 내놓고, 친일인사들은 모두 물러가라’고 외쳤다가 68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겨우 네살배기 때 아버지를 잃은 나정태씨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됐다. 3일 기자와 만난 나 부회장은 기구한 인생사를 펼쳐놨다.
광복 이후 뿌리 뽑힐 것 같았던 친일 세력은 오히려 주요 요직을 장악했다. 해외 귀환자와 북에서 온 동포들까지 몰려들면서 극심한 식량난이 빚어졌다. 특히 광복 이후 30만명의 귀환 동포가 유입된 대구·경북지역에는 쌀값이 일제강점기보다 무려 10배 이상 폭등했다. 이에 미군정은 쌀을 강제로 징수하는 ‘미곡 수집령’을 발표해 서민들의 삶은 더 곤궁해졌다.
결국 굶주림을 참다못한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이들 상당수는 대구 형무소에 수용됐다. 이들의 항거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림이 됐다. 바로 ‘대구 10월 항쟁’이다.
시위에 가담한 나 부회장의 아버지는 형무소로 끌려갔다. 이어 6·25전쟁은 아버지의 생사를 갈라버렸다. 아버지는 북한군에 가담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덧씌워 경산코발트광산(경산시 평산동)에서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 7~9월쯤 당시 나씨 아버지를 비롯한 3천500여명이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몰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를 잃은 뒤 나 부회장의 고된 삶이 시작됐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2살 아래 동생을 입양보냈다. 나씨도 큰집에 맡겨졌다. ‘빨갱이 아들’이라는 비난 속에 연좌제로 행여 피해를 볼까봐 아버지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도 못했다.
한맺힌 삶을 인정하며 조용히 지내던 그에게 큰 계기가 찾아왔다. 2000년에 6·25전쟁 직후 미군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 철교 밑에서 양민 300명을 학살한 일명 ‘노근리사건’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씨도 용기를 냈다.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을 파고들었다.
2004년 처음으로 유해발굴에 나서기도 했다. 나씨는 “소문으로만 듣던 유골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니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는 800여구다. 나씨는 “유골을 하나도 빠짐없이 발굴한 뒤 위령탑을 세워드리고 원혼을 달래고 싶다”고 말했다.
채영희 10월 항쟁유족회장(여·70)도 같은 처지다. 채 회장의 아버지 채병기씨(당시 24세)도 10월항쟁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50년 대구 가창골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평생 머릿속에서 붉은빛(?)으로만 투영됐던 상상 속 아버지가 시민을 위해 앞장섰다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는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채 회장은 “가창골 어딘가에 묻힌 아버지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대구 10월항쟁’이라는 말보다 전국적인 기념일로 ‘10월 항쟁’이라 불리기를 원한다”며 “젊은이들에게도 10월 항쟁의 뜻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다시 10월이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물론 당시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힘든 작업에 나선 나 부회장과 채 회장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10월항쟁 = 1946년 10월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대규모 시위. 미군정이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미곡 수집령을 선포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미군정의 식량정책에 항의하던 대구시민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는 무장항쟁으로 비화돼 그해 말에는 남한의 거의 모든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손동욱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