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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웨딩문화 변천사…추억이 된 갈비탕

2014-10-24
대구 웨딩문화 변천사…추억이 된 갈비탕
옛 명성예식장 전경.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명성, 귀빈, 황제, 금성, 고려예식장….

그때는 예식장이 공간만 대여하고 먹고사는 업종이었다. 예식장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예식장을 사용하려고 하면 웨딩드레스와 사진 등을 좋건 싫건 패키지로 구입해야만 했다. 식당은 별도로 계약했다. 요즘처럼 웨딩홀 안에 식당이 없었다. 길을 건너 신랑과 신부측 전용 식당으로 가야 했다. 사회자의 큰 임무 중 하나는 식당 안내 방송을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당시 메뉴는 갈비탕·비빔밥·불고기덮밥 일색이었다. 예식장 허가도 까다로웠다. 한 구에 한 개 정도만 허가됐다. 그래서 예식장 사장은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92년 법이 개정돼 예식장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다. 예식장 춘추전국시대가 개막된다. 새로운 감각의 예식장이 도래한다. 선두주자는 94년 수성구 ‘다래웨딩뷔페’였다. 예식장에서 직접 식당까지 끌어안은 새로운 문화였다. 다래가 지역에서 처음으로 ‘웨딩뷔페’를 개척한 것이다. 뒤를 이어 코리아, 패밀리뷔페, 하나뷔페, 신라뷔페, 태백산맥 등이 가세한다. 하지만 곧이어 대규모 웨딩뷔페 시대가 열린다. 두산오거리 코리아나, 한국관, 한솔뷔페, 명성웨딩, 알리앙스 옆 웨딩캐슬, 성서 아드리아웨딩홀, 동구 르네상스웨딩홀, 오월의 정원 등이 봇물 터지듯 혈전을 벌인다.

특히 오월의 정원은 당시 아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던 노보텔에 입성해 식당을 정원처럼 꾸몄고 한식·중식·양식·일식뷔페를 특화시켜 일대 선풍을 일으킨다.

그러다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웨딩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하우스뷔페웨딩홀’이 등장한다. 그 선두주자가 바로 수성못 바로 옆에서 캐주얼 미국풍 레스토랑 문화를 개척했던 ‘뉴욕뉴욕’이다.

최근 달서구의 파라다이스와 비앙코, 강북컨벤션웨딩홀, 웨딩아일랜드, 동구 퀸벨 등이 공연장 같은 ‘컨벤션웨딩홀’ 시대를 연다. 퀸벨의 경우 신부를 3층에 대기한 리프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게 한다.

새로운 웨딩문화에 따라 ‘퇴물’로 전락하는 게 있다.

비디오 촬영이 사라졌다. 심지어 주례사, 폐백, 신행음식 등도 전격적으로 생략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 주례 대신 전문 사회자에게 주례를 포함해 전체 진행을 맡기기도 한다. 당일 신혼여행을 안 가고 지인과 놀기 위해 오후 5시에 저녁웨딩을 하는 커플도 늘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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