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사랑·행복·생명…밥은 ‘밥’ 이상의 의미
생명의 탄생과 죽음 공동체와 음식윤리 등 식품공학자가 말하는 음식에 대한 인문적 성찰
한국인에게 밥은 사전적 정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공부나 일에 지쳐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자녀에게 부모가 “밥은 먹었니?”라고 물을 때, 밥에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안쓰러운 마음이 담겨 있다. 한국인이 가까운 친구와 만났을 때 건네는 첫 인사말도 “밥은 먹었니?”이다. 이때 밥은 단순히 호화된 전분질 곡식이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정감어린 인사인 것이다.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인 저자는 평소 음식을 만들고 팔고 먹는 우리의 삶에서 수많은 질문을 끄집어낸다. 난 왜 먹을까? 난 먹기 위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먹는 걸까? 공동체와 음식은 무슨 관계가 있나? 음식은 신분과 관계가 있는가? 금기음식과 음식문화의 상대성은 어떠한가? 음식윤리라는 생소한 단어의 뜻은 무엇이고 그 역사는 어떠한가? 등이다.
나의 밥 이야기//김석신 지음/ 궁리/272쪽/ 1만5천원 |
식품공학자 출신의 저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은 꽤 어렵고,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 그는 이런 다양한 질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인문학과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며 자료를 모아 나갔다. 특히 공학도 출신인 저자가 평소 접하지 않았던 윤리와 관계되는 책과 논문을 두루 섭렵했다. 이 과정에서 ‘음식윤리’라는 과목을 개설해 강의하게 됐고, ‘잃어버린 밥상, 잃어버린 윤리’라는 책도 다른 학자들과 함께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또 음식에서 비롯되는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발간했다.
저자는 우선 이 책에서 생명의 탄생과 동시에 음식이 함께했음을 강조한다. 생명의 탄생은 삶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옛 전통사회에서는 산고가 시작되면 윗목에 삼신상(三神床)을 차리고, 쌀과 정화수 세 그릇을 올려 순산을 기원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쌀과 정화수로 흰쌀밥과 미역국을 각각 세 그릇씩 지어 올렸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매우 특별한 음식이었다. 우리의 근본이 되는 생명을 상징하는 쌀로 지은 흰쌀밥은 귀한 것이며, 따라서 이 귀한 음식을 생명의 첫 탄생과 함께하도록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생명의 탄생과 음식이 함께했다면, 죽음의 순간에도 음식은 빠지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죽음을 결코 끝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고인은 저세상으로 떠나지만 우리와 다시 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승 가는 고인에게 노잣돈도 주고, 입안에 쌀을 물려 저승 가는 길에 요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고인이 돌아가신 날 또는 설날, 한식, 한가위와 같은 명절에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음식을 마련한다.
공동체와 음식의 상관관계를 향한 저자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집트를 나온 뒤 생명을 유지하기 힘든 광야에서 목마름과 배고픔을 호소하면서 마실 물과 먹을 것, 그리고 고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치니 마실 물이 터져 나왔고, 먹을거리로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며, 고기로는 메추라기를 충분히 먹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먹고 마신 물, 만나, 메추라기는 충분한 양이 무료로 주어졌기에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경합할 필요 없이 먹고 마실 수 있었고, 공동체의 어느 구성원도 빼놓지 않고 먹고 마셨기에 공공재임에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또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유명한 이유는 당연히 공공재인 물을 사유재인 양 팔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물은 생수병에 담겨 엄연히 팔리고 있지 않은가”라며, “물과 음식이 공공재이건 사유재이건 공공재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물이나 식량의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공공재로 되돌아갈 수 있다. 물과 식량은 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글=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그래픽=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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