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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짐되기 싫어…” 시신기증의 그늘

2015-03-20

대구 의과대 4곳 3년간 160구
“30%가 가정사·경제문제 때문”
일부 유족, 유골도 찾지 않아

기초생활 수급자였던 A씨(56세 사망)는 딸이 한 명 있었지만, 평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챙겨주는 이가 없어 끼니 거르기가 일쑤였던 그는 지난해 8월 쓸쓸히 숨을 거뒀다. 부친의 장례를 치를 형편이 못 됐던 딸은 A씨 시신을 대구의 한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B씨(78세 사망)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생활했다. 별다른 수입이 없어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2008년 9월 대구의 한 의과대학을 찾아가 시신기증을 신청했다. 지난해 2월 B씨가 사망한 뒤, 시신은 그의 희망대로 해당 대학에 기증됐다. 하지만 이 의과대학에 기증된 시신이 많은 탓에 장례도 못 치르고 지금껏 대학 시신보관소에 안치돼 있다.

경기불황과 가족해체의 여파로 의과대학에 연구용 시신기증이 늘고 있다.

19일 대구지역 4개 의과대학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2~2014년) 기증된 시신 수는 모두 160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4개 의대가 연간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시신 45구 안팎(3년간 135구)을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기증 시신이 많다 보니 B씨처럼 의과대 시신보관소에 1년 이상 무작정 안치돼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의과대에선 연간 ‘시신기증 쿼터제’도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연구용 시신은 무연고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 새 장기기증 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의료계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숭고한 뜻을 실천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여기다, 개인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이유로 시신을 기증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인의 경우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스스로 의과대에 기증 신청을 한다는 게 대학 측의 설명이다.

대구의 한 의과대 관계자는 “좋은 뜻으로 시신을 기증하는 이들도 많지만, 시신기증자의 30% 정도는 경제 문제나 가정사 때문”이라며 “시신기증이 갖는 숭고한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특히 시신 연구를 한 뒤 합동으로 기증자의 장례식을 치르는데, 일부는 장례 절차를 병원에 떠맡기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유골을 찾아가지 않는 유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가족해체시대의 산물로 보기도 한다.

백승대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경제적인 요인도 있지만 부모·자식 사이에 끈끈한 인간적 유대관계가 없어진 게 문제다. 부모 시신을 사물처럼 여기는 물신주의가 팽배한 점도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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