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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터·화가·기타리스트 삼백의 고장 ‘미스터 힐링’ (1)

2015-06-05

■ 상주서 ‘서울 홍대급’ 커피가게 운영 김민우씨

로스터·화가·기타리스트 삼백의 고장 ‘미스터 힐링’ (1)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타준 커피믹서 맛에 반해 커피를 탐구한 끝에 한국의 대표적 로스터로 우뚝선 김민우씨. 365일 커피 볶는 기계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가장 완벽한 로스팅 포인트를 찾기 위해 98년 커피가게를 오픈한 때부터 지금까지 로스팅 일지를 작성했다.

난 가끔 ‘열정’이 두렵다. 뭐랄까, 열정이란 게 맘에 세들어 사는 하늘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열정에 올인하면 분명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고 믿지. 아는 이들이 내게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도대체 넌 몇 가지 재주를 타고 났지?’

아침에는 커피 로스터(Roaster)였다가, 밤에는 로커, 한가한 대낮에는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주말에는 가죽옷을 입고 바이크족으로 돌변한다. 네 토막 열정을 원스톱으로 다 이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왜 그렇게 다른 열정이 숨어 있는지 의아할 때가 많지만 이 또한 내 운명이라 믿는다. 난 나의 열정에 대해 침묵을 한다. 물어와도 외면한다. 내 열정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이 자랑이라면 이미 내 열정은 ‘허세’로 전락할 것이다. 난 솔직히 무거운 게 싫다. 따지고 분석하는 것도 싫다. 그냥 ‘원석 그대로’ 살기를 원한다.

일찌감치 내 열정이 ‘불감당’이란 걸 알았다. 열정이 중구난방으로 치닫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 결혼을 했다. 가족은 내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

삶이란 자기 열정의 한계를 확인하는 고단한 여정이다. 내 열정의 가능성이 어디까진 지 알기 위해 세속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1998년 상주에서 커피 볶는 집(커피가게)부터 오픈했다. 돈을 버는 이유? 내 열정이 생계한테 잡아먹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고집불통스러운 내 삶을 얘기하기 위해선 몇 명의 아티스트를 옆에 불러 세워야 될 것 같다.

집시 기타리스트인 패냉 스넷 베르그, 재즈 피아니스트인 키스 자렛, 보그와 하퍼스 바자 등 세계 패션잡지에서 일을 한 ‘패션누드’를 개척한 사진작가 라이온 맥킨리, 그리고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한테 영향을 받고 뉴욕 그라피티 문화에 영향을 주었고 마약중독으로 28세에 요절한 낙서화의 귀재 장 마셀 바스키아 정도면 딱이다.

그래, 나는 지금 시골에서 생두를 볶고 살아가는 보헤미안 같은 로스터. 긴머리에 텁수룩한 턱수염, 늘상 검정 톤의 의상, 거기에 말수도 없다. 거리를 걸어가면 겨울잠에서 깨어난 짐승인 줄 안다. 삼백(쌀·누에고치·곶감)의 고장에 느닷없이 나타난 ‘옥에 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상주의 미스터 힐링’이라 자부한다.

지금 내 심장은 4개의 소행성을 거느리고 있다.

커피·기타·미술·오토바이. 이게 내 열정을 구성하는 4대 구성체다. 솔직히 난 그걸 굴려 뭐가 되고 싶은 맘이 없다. 그냥 그 네 종목을 사계(四季)처럼 굴리며 재미나게 살고 싶은 맘밖에 없다. 삶은 결국 ‘재미’다. 재미없으면 진다. 진지한 건 결국 솔직하고 재미있는 것한테 진다. 그 시절, 데모지상주의가 판을 칠 때는 진지한 게 답이었다. 그런데 가치관이란 늘 변하는 법. 이젠 너무 진지한 게 ‘위선’일 수 있다.

현재 내 베이스 캠프는 상주시 상주읍 한 골목 유흥가 길 모퉁이에 있는 ‘커피가게’.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별별 괴물이 이 캠프로 몰려든다. 난 여기 앉아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다 감지한다. 커피를 마시면 여기가 상주란 생각을 금세 잊게 해준다. 커피가게는 서울 홍대 클러버와 상대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전국구 카페’.

손님이 별로 없는 오후 3시 무렵. 가게 입구에 의자를 놓고 바람개비처럼 앉아 물끄러미 행인을 구경한다. 골목을 핥고 가는 바람에 업혀 잠시 바람도 된다. 바람 좋은 여름날 바지랑대에 잘 걸려 너풀거리고 있는 환한 빨래 같은 기분. 이 기분 하나로 난 족하다. 그게 성공 아닌가. 그 바람은 타임머신으로 변해 단숨에 나를 어린 시절 고향 어귀까지 데려가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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