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古 유류판매 歷史를 돈 많이 준다고 팔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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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개점한 대구오일상회. 당시 1대 CEO인 박재관 회장이 자전거를 타고 배달한 것을 증명하듯 가게 앞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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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야 인지도가 낮지만, 나이든 어르신에게는 대구·경북 최고의 기업으로 회자된다. 지역에서는 대구은행 다음으로 현금이 많은 기업으로 꼽혔고, 이 기업의 하루 매출 정산이 마감돼야 은행이 문을 닫았을 정도였다. 이 업체를 담당하는 은행 실무자도 ‘똑똑한’ 직원이라야 뽑혔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과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이 이 업체의 실무자였다. 국내 유류업계 최초로 포인트 적립 사은행사를 시행하며 주유소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구·경북 납세번호 1호 기업인 유류업체 KK주식회사(옛 경북광유) 얘기다. 사업자등록증번호는 12번이지만 1~11번까지는 국세청에서 사용해 사실상 1번인 셈이다.
◆ 1927년 대구오일상회가 첫 출발
KK주식회사의 역사는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류 판매회사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초대 CEO인 박재관 회장이 지금의 대구은행 대신동 영업부 자리에 ‘대구오일상회’를 개점한 것이 첫 출발이다. 가난했던 산골소년인 박재관 회장은 가난을 벗고 싶은 마음에 양복점, 공장 등에서 일하다 18세가 되던 1923년 성냥 도매상 겸 석유상회에 취직하면서 오일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1927년 대구오일상회를 개업해 처음 사업에 발을 디딘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한국사람이 경영하는 최초의 석유회사였다.
1∼3대 CEO 박재관·진희·윤경
조부서 손녀까지 3代 ‘기름 외길’
호롱불 밝힌 시절 자전거로 배달
포인트 적립 첫 도입 등 업계 선도
1927년 대구오일상회로 첫 출발
1949년 경북광유로 비약적 발전
2005년 한국광유 분사 등 내홍
KK주식회사로 사업다각화 시동
당시에는 기름을 일본인들이 세운 조선석유로부터 공급받아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단순한 형태였다. 칠곡·의성·안동 등 대구 인근 지역에 등유를 한홉, 두홉 혹은 한 되, 두 되 단위로 팔며 자전거로 배달했다.
참고로 1920년대 석유의 용도는 오늘날처럼 차량 운행용이 아니라 호롱불을 밝히는 정도로 쓰여 박카스병이나 맥주병에 담아 팔았다. 이후 유류 수송 수단은 달구지와 개조한 미 군용 트럭으로 진화했고, 1970년대 무렵에는 탱크로리도 등장하게 된다.
◆ CEO 교체기 때 ‘휘청’
회사가 한단계 도약하게 된 시기는 1949년. 미국 텍사스 석유회사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해 경북광유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15년이 지난 1964년에는 현 SK에너지<주>(전 대한석유공사)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해 기름을 공급받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회사는 다소 굴곡이 있긴 했지만 탄탄대로를 걸었다. 한때 포스코보다 큰 기업이었고, 기관단체장으로 누굴 보내도 되냐고 의견을 물었을 만큼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CEO가 바뀌는 시기마다 여느 회사처럼 상속·세금 등의 문제로 과도기를 겪어야 했다.
박재관 회장의 장남인 2대 CEO 박진희 회장(1928년생)이 사장으로 취임하던 1969년도 회사의 위기상황이었다. 서울에서 아스팔트 관련 사업을 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경북광유 사장이 된 박진희 회장은 경영난 타개책으로 대구 이외에 점촌·안동·영주 등 경북 북부를 공략했다. 박진희 회장의 역점 사업은 주유소 개설로, 1969년부터 97년까지 설립한 주유소가 총 37개였다. 이런 전략은 성공적인 결과물을 낳아 회사는 75년부터 안정됐고 80년부터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됐다.
그러다 경북광유는 또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슬하에 딸 여섯을 둔 박진희 회장이 후계를 확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다. 회사를 매각할 것인지, 존속시킬 것인지에 대해 딸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SK에너지에 매각하자는 의견에 일부 딸들은 찬성하며 매각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첫째딸인 박윤희씨와 셋째딸인 박윤경 대표는 다른 자매 주식을 사들여 각자 50%씩 지분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첫째 사위인 곽혜근씨와 박윤경 대표가 공동 대표를 맡다가 2005년 경북광유가 한국광유를 분사시켰다. 경북광유는 박윤경 대표가 명맥을 이어가며 KK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고, 한국광유는 곽혜근 대표가 HK라는 이름으로 꾸리고 있다.
◆ “무식이 용감했다”
유류회사 딸로 자랐지만 회사 한번 방문한 적 없을 정도로 기름에 대해 몰랐다.
지난 18일 KK주식회사 본사에서 만난 3대 CEO인 박윤경 대표는 “무식이 용감했다는 말”로 당시를 돌이켰다.
음악을 전공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42세에 그것도 ‘남성 업종’으로 인식됐던 유류회사 경영에 뛰어든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박 대표는 “회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경영 참여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오래된 기업인데 돈 많이 준다고 매각하는 건 아니라는 일념뿐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1990년대 후반은 설상가상으로 주유소 경쟁이 치열할 때였다. 이전에는 주유소 개설에 거리제한(서울 700m, 직할시·시·읍 1㎞, 기타지역 2㎞ 이상)이 있었지만 1991년 주유소 거리제한이 완화되고, 1995년에는 주유소 거리제한이 완전 철폐돼 과열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박 대표는 “주유소 거리제한은 과거 대구·경북에서 독점에 가깝던 경북광유로서는 유리한 제도였지만 이 제한이 풀리고 가격자유화에다 2000년대 알뜰주유소가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면서 “이에 아스팔트, 윤활유, 기름수송을 위한 물류사업, 렌터카, 카드밴사업 등으로 유류와 관련된 사업을 보다 다각화하면서 사세를 확장해 갔다. KK주식회사가 주유소만 하는 줄 아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도매 비중이 훨씬 더 크다. 먹는 기름 말고는 다 판다고 보면 된다”며 웃었다.
지난해에는 국채보상로에 있는 본사 사옥 일부에 스타벅스를 입점시켜, ‘이색 동거’를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 현재는 분사 직후 절반에 불과했던 사업 규모가 분사 전만큼 확장됐다.
박 대표는 “선친이 물려준 사업을 잘 꾸려 KK주식회사가 100년, 200년 가는 기업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 “유류사업으로 승부해 지역사회에도 봉사하는 기업으로 남고 싶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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