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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남과 함께 떠나는 일본 차문화 기행] 센 리큐,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차 선생…와비차 완성

2016-01-01
[김현남과 함께 떠나는 일본 차문화 기행] 센 리큐,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차 선생…와비차 완성


난슈지(南宗寺) 경내와 슈운암(集雲庵)을 관람한 후에는 다시 고료마에역(御陵前驛)으로 발길을 돌린다. 역에서 난슈지의 반대 방향으로 안내도를 따라가면 일본 차의 완성자인 센 리큐(1522~1591년)가 태어난 출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우물이 보존되어 있다. 차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센 리큐를 잘 알겠지만, 모르는 이도 많을 것이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사극에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나오는 장면에, 히데요시 옆에서 검은 승복처럼 생긴 옷을 입고 차를 우리면서 책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센 리큐이다.

일본 천하를 호령하였던 노부나가(信長)와 히데요시의 차 선생으로 천가(千家)류의 시조가 된 다성 센 리큐의 본명은 다나카 요시로(田中與四郞)이며, 호는 종이(宗易)이다. 센 리큐가 태어났던 당시의 사카이(堺)는 무역이 활발하였던 국제도시이며, 교토에 필적할 만한 문화의 도시로 융성기를 맞이했던 때이다. 센 리큐의 아버지는 사카이에서 이름난 상인이며, 리큐는 가게의 후계자로서 품위와 교양을 몸에 익히기 위해서 16세 때부터 차와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18세 때에는 당시 다도의 일인자였던 다케노 조오(武野紹鷗)의 문하로 들어가 수련을 하였으며, 23세에 처음으로 다과회를 열었다고 한다.

조오의 정신적인 스승인 무라다 주코(村田珠光: 1423~1502)는 조오가 태어난 해에 죽었지만, 주코는 와비(간소한 가운데 깃든 한적한 정취)차의 시조이다. 주코는 일휴(一休)의 제자로서,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다도의 목적으로 삼고, 다회의 의식적인 형태보다는 차와 마주하는 사람의 정신을 중시했다. 큰 방은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다미방을 병풍으로 4장 반의 크기로 둘러싸는데, 이것이 나중에 다실로 발전해 간다.

조오는 주코가 말하는 “부족(不足)의 미(불완전하기 때문에 아름답다)”에 선사상을 채용하여, 고가의 명물 다완을 맹목적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도구들을 다과회에 이용하여 다도의 간소화에 노력했다. 그리고 정신적 충족을 추구하면서 와비차를 정착시켜 나갔다.

리큐는 스승의 가르침을 한층 더 발전시켜 ‘와비’의 대상을 차도구뿐만이 아니라 다실의 구조나 말차를 달여 손님에게 접대하는 작법 등 다과회 전체의 양식에까지 확대하였다. 또 당시는 찻그릇의 대부분이 중국·조선으로부터의 수입된 것들이었지만, 리큐는 새롭게 다완 등 차도구를 창작하고, 족자에는 선의 ‘고담한적(枯淡閑寂)’의 정신을 반영시킨 수묵화를 선택했다. 이로서 센 리큐는 무라타 주코로부터 발전시켜 온 와비차의 정신과 작법을 100여년 만에 완성하였다.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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