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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애국의 길 라이딩

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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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언덕 없어질 뻔한 신암선열공원…애국지사 푸대접 씁쓸

20160311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에 있는 어둠이 내리 비치는 반곡지의 야경. 대구 인근 봄사진 출사지의 명소로 전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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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선열공원에 우리가 잘 아는 선열은 없다. 그나마 좀 안다고 생각되는 목우(牧牛)의 묘비 앞에 서서 큰절을 올렸다. 목우 백기만 선생 묘비는 신암선열공원의 대표 얼굴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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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회관에 세워져 있는 동암 서상일 선생 동상 앞에서 4·19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선생을 대구로 모실 날을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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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구 성동에 있는 수성지역 경승을 노래한 ‘고산팔경’의 산실인 고산서당과 퇴계 이황나무가 자아내는 하오의 실루엣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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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의 야경을 대표하는 경산 남천 영대교의 LED 조명이 무지갯빛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52位 잘 몰라 죄송한 마음 안고 출발
금호강자전거길 따라 조양회관 도착
제헌헌법 틀 마련 東菴 기리는 기회

경산 반곡리 가다 마주 한 고산서당
철로에 풍광 사라진 ‘고산八景’ 애석
남천 영대교의 LED 조명 夜景 일품

위안부 운동가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극영화 ‘귀향’과 시인 윤동주의 반생을 그린 영화 ‘동주’가 때늦은 봄망울을 터뜨렸다. 이 땅에 탈근대가 풍미한 지 1세대 넘게 흘렀어도 이제야 민족주의 코드가 주권을 회복해 가는 형국이라니! 역사는 그렇게 꾸역꾸역 전진해 가는 것인가. 더디 굴러가도 좋으니 후천개벽하기를 염원할 따름이다.

3·1절을 맞아 신암선열공원에 오후 3시30분경 도착하니 단충사 앞에 돗자리를 깔고 윷놀이를 하는 노인들과 산보 나온 주민 일부가 보일 뿐 평소처럼 한산했다. 신암선열공원은 복현 푸르지오 아파트를 찾아가면 안내판에 따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대구관광고등학교 인근 신암5동 산에 있다. 3·1절 기념식이 열리기 전 지역의 주요 기관 단체장이 참배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딴에는 지역사에 대해 약간 아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신암선열공원에 안장된 52위의 순국선열 중 알 만한 분은 3·1운동의 대구판 3·8만세때 서문시장에서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대구YMCA 총무 김태련 의사와 ‘대구시민의 노래’를 작시한 백기만 의사, 교토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8월 교토유학생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돼 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1943년 6월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되어 윤동주 시인을 만난 일화로 유명한 김헌술 의사 정도였다.

신암선열공원은 폐기될 상황에 처했다가 55년 결성된 3·1동지회의 진정과 민원에 의해 마련됐다. 항일 독립운동 유공자의 메카인 대구·경북에서 애국자 푸대접 현장을 발각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로라하는 스타급 의사·열사가 없는 신암선열공원은 항일 독립운동을 상징할 국보급 지역 인물을 수도권 국립묘지에 ‘빼앗긴 들’로 느껴졌다. 솔직히 신암선열공원은 자전거로 애국하는 시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 여기는 평생 앙숙으로 서로 으르렁거렸던 볼테르와 루소를 함께 잠들게 한 코비시타옹의 판테온이 아니지! 죽은 애국자들이 편히 쉴 조국 강산은 어디인가.

신암선열공원을 뒤로 하고 동서시장 길을 따라 동구청 직장어린이집 골목길을 경유하여 아양기찻길 데크를 찾아 금호강자전거길로 합류하면, 10분 남짓한 거리의 지척에 대구를 무대로 ‘대한남아’로 살다간 동암 서상일 선생을 모셔놓은 조양회관이 있다. 이곳은 금호강변의 임진호국 영남충의단, 망우당공원, 항일독립기념탑과 어우러진 대구·경북 항일 독립운동의 혈소판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헌법기초위원장으로서 제헌헌법 제정의 정치적 실무자였던 그는 원화여고의 설립자나 조양회관 건립자 정도로 기념되는 것 같다. 빙허 현진건 선생의 경우처럼 사후 무자식하팔자의 슬픔을 겪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인물기념사업 이면에 깃든 친족주의의 긍정·부정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에게 친아들이 있다면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위상이 이 정도에 그칠까. 알고 보면 그는 문학의 이상화 시인 이상으로 떠받들어야 할 대구를 넘어선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횃불이 아닌가.

대구 동쪽으로 애국의 길 라이딩을 마치니 평소 가고 싶었던 경북의 방콕 반곡지가 머리에 들어왔다. 초행길이라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지명 몇 개만 입력해놓고 페달질을 시작했다. 봄기운에 취해 야간장비 없이 나온 것도 잊고, 10그루 안 되는 왕버들이 묘한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반영사진의 명소 경산 남산면 반곡리로 가는 3·1절 경축라이딩을 시작한다.

비내리는 고모령비가 있는 만촌자전거경기장을 찍고, 팔현마을 경부선 철로 진입 전 좌측 포도밭 쪽으로 향하면 금호강우회자전거길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범안대교~금호대교~가천잠수교를 차례로 지나고 자전거길이 끝나는 매호교에서 성동 37길로 진입해 남천자전거길을 향해 전방을 주시하면서 가다가 성동들 간이배수펌프장 앞에서 우측 산기슭 쪽을 바라보니 홑처마 팔작지붕의 한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갈 길이 멀어도 안 보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다가가보니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던 수성구 성동 산 22 고산서당이었다(이건 애국의 라이딩길에 예상치 못한 ‘득템’).

고산서당은 조선 명종 조에 지역의 유림들과 경산현령 윤희렴이 재실을 짓고 퇴계 선생에게 재실의 이름을 청하여 재(齋)는 고산(孤山)으로, 문(門)은 구도(求道)로 한 자필 사인을 받은 곳으로 유서 깊다. 임자 없는 서당을 호위하는 지킴이처럼 흰그늘을 드리우며 바깥에 선 느티나무 노거수들은 연륜이야 언밸런스해도 퇴계 이황나무와 우복 정경세나무로 살고 있다. 남주 채헌기와 운계 서석보가 ‘고산(서당)팔경’을 노래한 앞쪽으로 남천이 굽이 흐르고 강변엔 넓고 풍요로운 성동들판이 펼쳐져 있는 고산서당은 수성지역의 경승이었나 보다. 하늘을 어지럽히는 한전의 전깃줄과 근대의 기적소리를 울린 철로를 비롯한 온갖 현대문명에 의해 날아간 고산팔경은 뜻깊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사려 깊은 디테일을 요구하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성동교에서 남천로를 따라 가니 욱수 펌프장이 있는 곳에서 경산 남천둔치길 강변서로가 나왔다. 머릿속은 자인, 남산, 상대온천 세 단어가 지배했다. 이정표가 분명하니 다행히도 길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영대교~세광맨션~경산서부초등~경산교~서옥교~경북 체중고~대구FC축구단 유소년클럽예삼성현로~원효로~상대로~성산로를 지나 서린요양원이 있는 고갯마루를 넘으니 반곡리 마을비가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평균속도 16㎞로 이동거리 17㎞를 달리니 주행시간은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도착하니 오후 7시를 알리기 10분 전이었다.

어둠으로 색칠된 아무도 없는 공간엔 절대의 시간이 찾아왔다. 데크 위에 무릎을 꿇고 어둠 속의 왕버들을 바라보면서 풍류만다라하신 하느님께 보편지향의 기도를 바쳤다. 나홀로 라이딩할 때는 음악과 동행하면 외롭거나 무섭지 않아 좋았다. 탕자가 간절하게 기도할 땐 프리마돈나들의 18번처럼 들리는 ‘Signore Ascolta’(왕이여, 들어주소서!)가 가장 신났고, ‘몽세라 카바예’의 음성이라면 금상첨화였다. 짙은 어둠의 압박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귀로를 선택해야 했다. 마침 경산 399번 버스가 반곡지 종점에 들어왔다 회차해 나가는 것을 보고는 뒤따라 가기로 했다. 경사가 있는 온 길로 가는 것보다야 나을테니. 하남로의 전지보건진료소와 송내공단&사월공단을 잇는 프라임밸리를 달리니 남산면 사월리 풍년연탄직매소 앞에 있는 대왕산 죽창의거 항일운동 공적비와 조우했다. 3·1절 경축 라이딩에 꼭 어울리는 항일운동 마을을 지나가는 마음은 감개무량했다.

전조등도 후미등도 챙기지 않고 봄의 기운에 이끌려 나선 애국의 길 라이딩, 어둠 속에서 쫄면서 산양교와 옥천교를 지나 마을길을 벗어나니 원효의 품성을 닮은 갓길이 넉넉한 원효로를 만나 안심하며 귀가할 수 있었다. 귀로에 만난 남천에 있는 영대교의 LED 조명이 연출하는 야경은 대구·경북에서 본 야경치고는 최고였다. 도시철도 2호선이 있는 정평역에서 애국의 길 라이딩은 끝을 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신암선열공원∼동촌 조양회관∼성동 고산서당∼경산 남천∼반곡지∼남산면 사월리 대왕산 죽창의거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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