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몽
色을 뺀, 색다른 영화
술집 여주인의 마음 얻으려는 세 남자와 한 여자
양익준·박정범·윤종빈 감독 前作 캐릭터로 등장
장률 감독의 흑백영화…화려한 카메오 보는 재미도
화려한 서울 도심 빌딩 숲을 마주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삶의 풍경을 가진 수색동. 그곳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농담 따먹기나 하는 한물간 건달 익준(양익준),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탈북자 정범(박정범), 건물주 아들이지만 어리바리함 때문에 어설픈 금수저란 소리 딱 듣기 좋은 종빈(윤종빈). 그리고 이 세 남자가 모두 좋아하고 아끼는 예리(한예리)가 있다.
예리가 전신마비의 아버지를 돌보며 운영하는 작은 술집 ‘고향주막’은 세 남자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오아시스다. 그리고 이곳에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와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눈길로 예리를 바라보는 소녀 주영(이주영). 예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세 남자보다 더 적극적인 구애를 펼친다. 세 남자와 두 여자의 관계는 그야말로 묘하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인 ‘춘몽’은 제목처럼 봄날에 꾸는 꿈같은 영화다. 극 중 장면에서도 꿈속 이야기가 엉뚱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지듯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이다.
영화와 현실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주연 배우들이 실제 본명으로 극에 등장한다. 특히 현실에서 영화 감독이기도 한 세 남자 배우는 자신들이 연출하고 출연까지 했던 영화 속 캐릭터로 나온다. 양익준은 ‘똥파리’에서의 상훈 역, 박정범은 ‘무산일기’의 승철 역, 윤종빈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의 허지훈 역을 연기한다. 이들 감독의 전작을 다 본 관객들이라면 ‘춘몽’으로 무대를 옮겼을 뿐 계속해서 그 캐릭터들이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감독들이 다른 감독의 작품에서 자신들이 만들어냈던 캐릭터를 다시 살려내는 독특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최악의 하루’에서 하루에 세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은희로 분해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았던 한예리가 이번 영화에서는 세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는 화려한 진용을 자랑하는 카메오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장률 감독과의 인연 등을 매개로 특별 출연한 배우들이 엉뚱하고도 코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신민아와 김태훈이 정범의 전 여자친구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친구로 분해 수색동을 찾는다. 또 유연석이 세 남자의 사랑을 받는 예리의 휴대폰을 장식한 이름 모를 매력남으로 등장해 질투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최근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W’를 통해 대중에 더욱 친숙해진 배우 김의성은 극 중 정범이 일했던 회사의 사장으로 출연해 한예리와 특별한 연기 합을 선보인다. 익준의 단골 당구장을 찾아오는 조달환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도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지만 꿈이 주로 흑백으로 기억된다는 점에 착안해 흑백 필름으로 촬영됐다. 주인공들이 다소 허무맹랑하고 실없는 농담을 내뱉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툭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에피소드는 있지만 서사가 약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제목과도 같이 현실에서 잘 와 닿지 않는 뜬구름처럼 느껴진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1분)
★럭키
운명이 뒤바뀐 두 남자
그렇게 두 남자는 목욕탕에서 만나게 된다. 재성은 형욱이 손목에 찬 시계가 고가라는 걸 알고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욕탕에서 때를 밀던 재성은 뒤이어 옷을 벗고 내부로 걸어들어오다 비누를 밟고 넘어져 정신을 잃은 형욱을 보게 되고, 자신과 그의 목욕탕 키를 바꿔 도망친다.
냉혹한 킬러와 죽는 것조차 쉽지 않은 무명배우 등장
목욕탕 ‘키’ 때문에 바뀐 삶 드라마틱하고 코믹하게
물오른 이준의 ‘찌질’ 연기 인상적…막판 반전 묘미
그 후 형욱은 기억 상실증에 걸린 채 자신이 재성이라고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신을 구조해준 구급대원 리나(조윤희)의 도움으로 분식집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며 돈을 벌던 중 기억을 잃기 전 자신이 단역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고 배우로 성공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같은 기간, 재성은 뭔가에 홀리듯 형욱의 삶을 추적하게 되고 그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진다.
‘럭키’는 막판 반전의 묘미가 있는 영화다. 얼굴만 쳐다봐도 ‘피식’ 웃음이 나오는 배우 유해진이 보여주는 코믹물이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웃음의 강도는 예상보다 약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부담 없이 그냥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미디가 아니라 의미와 재미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연기 인생 사상 첫 원톱 주연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은 유해진에게는 다소 깐깐하고 ‘짠’ 평가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유해진은 감초 조연일 때가 매력적이야. 주연을 맡기엔 뭔가 부족해”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관객들도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해진에게 화끈한 웃음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다른 두 캐릭터를 오가는 연기의 맛을 느끼는 게 핵심이다. 냉철한 킬러일 때와 무명 액션 배우일 때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또 바뀐 운명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질 때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 영화는 그런 부분에서 고리가 다소 헐겁다. 웃음과 감동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어정쩡한 전개를 보이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유해진의 연기에서 왠지 모르게 빈틈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의 변신은 새롭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죽기 전 마지막 일탈을 꿈꾸는 재성 역의 이준이 선보인 특유의 ‘찌질’ 연기는 지난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이어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남긴다. 유해진과 특별한 멜로를 선보인 조윤희의 모습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임지연은 마지막 반전이 있기 전까지 내내 의문의 여인으로 등장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간간이 등장하는 카메오는 의외의 웃음을 안긴다. (장르: 코미디,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3분)
김명은기자 dra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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