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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성했던 신라 茶문화…단아하게 스미는 香에 ‘쉼’ ‘치유’의 여유

2016-11-25

■ 푸드로드 경주

융성했던 신라 茶문화…단아하게 스미는 香에 ‘쉼’ ‘치유’의 여유
한국형 대홍포를 재현하는 등 30년 이상 우리 차문화 복원에 진력하고 있는 감산다향 이종우 대표.
융성했던 신라 茶문화…단아하게 스미는 香에 ‘쉼’ ‘치유’의 여유
표고와 송이를 결합시켜 탄생된 백송고를 보급하고 있는 광명농산 강인숙 대표.
융성했던 신라 茶문화…단아하게 스미는 香에 ‘쉼’ ‘치유’의 여유
홍화꽃밥 등 경주스러운 약선한정 메뉴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산드레 신보경 사장.

음식을 먹고 나면 이제 차향기를 맡아봐야 한다. 경주에서 제대로 된 차향기를 엿보기 위해서는 두 사람을 만나야 된다. 최차란과 이종우다.

국내 첫 대홍포·무차 생산한 이종우
30년‘감산다향’서 사계절 차와 함께
쑥·홀잎·감잎차 등 생산 全과정 손수
표고·송이 접붙여 백송고차도 개발

약선으로 신라의 맛 선뵈는‘산드레’
재료 본래 맛 살린 3種 자연밥상 인기


◆차향기를 찾아서

경주 시내에서 보문단지를 거쳐 불국사로 향하는 보불로를 달리다보면 좌측에 민속공예촌이 있고 조금 더 지나 우측에 ‘사등이요’(史等伊窯·동쪽 언덕의 가마터란 뜻의 이두식 표기) 간판이 보인다. 천도교를 창시한 수운 최제우의 형인 최세우의 증손녀인 구순의 여도공인 최차란. 한때 월북한 천재 무용가 최승희의 옷도 만들어 봤고 중년에는 자궁암에 걸렸지만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직접 황토방을 만들어 그 방 안의 열기를 통해 암을 극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들차회를 만들고 경주차인회장을 역임한 그녀의 필생의 숙업은 막사발처럼 생긴 일본의 국보급 다완인 ‘정호다완(正戶茶碗)’ 재현이었다. 74년 토함산 자락에 배수진을 쳤다.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93년 일본 다도 도구 평론가인 하야시야 세이조(林屋晴三)로부터 찬사를 받는다. 2013년 평생 빚어온 명품 다완을 12가지로 분류해 생애 마지막 막사발 전시회를 가졌다. 그녀는 자신이 재연한 막사발을 ‘구정사발’로 명명한다.

그 다완에 어울릴 법한 차향기를 맡기 위해 경주 시내를 벗어나 산내 쪽으로 갔다. 고집불통인 사내 이종우는 산내면 감산리에 있는 30년 역사의 제다공방인 ‘감산다향’에서 사철 차와 부대끼며 살아간다. 감잎차, 뽕잎차, 쑥차, 홀잎차, 무차, 발효차 등은 물론 반발효차인 ‘감산대홍포’까지 직접 만들어 화제가 됐다.

작업장 옆 3천300㎡(1천평) 크기의 밭에 차나무를 키운다. 공방에는 녹차와 무이암차 대홍포를 덖는 전용솥도 있고 청차를 발효시키고 건조하는 기기까지 구비하고 있다.

맛이 담백하고 인위적으로 향미를 제어하지 않아 이미 국내 승가에선 괜찮은 차로 입소문이 난 상태. 생산한 차의 60%를 청도 운문사, 울진 불령사, 남해 보리암, 양산 통도사 등의 스님들이 소비한다. 소리꾼 장사익,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 등도 이 집 차를 애용하고 있다. EBS에서 노자 강의로 인기를 얻은 최 교수는 4년전부터 감산다향 차를 애용했는데 지난 8월에는 차인들과 함께하는 인문학 특강을 감산다향에서 연 데 이어 오는 12월에 두번째 강의를 할 계획이다.

2008년까지는 OEM 방식으로 차를 생산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직접 자기 브랜드를 가진다. 차를 재배하고 그걸 수확해 수작업으로 차를 만드는 차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에겐 신라도공의 맘에 상응하는 열정이 있다. 매년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는 쑥차와 홀잎차, 5월 초부터 6월 상순까지는 뽕잎차, 감잎차, 녹차, 발효차,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무차를 만든다. 2000년부터 중국 푸젠(福建)성 우이(武夷)산에 가서 차 공부를 하면서 청차 관련 제다시설을 국내로 들여온다. 덕분에 감산대홍포를 2009년 경주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한국산 대홍포의 신지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때껏 한국에서는 기후와 기술 부족 등으로 인해 국내 생산은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그 벽에 도전했다. 감산대홍포를 맛본 사람들은 ‘한국형 첫 대홍포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무차는 동절기 선방 스님들에게 퍽 인기가 좋다. 감산에서 첫 상품화한 홀잎차는 이른봄 잎을 따서 만드는데 특히 비구니들이 좋아한다. 쑥차는 여름철 하안거에 들어간 선방 비구니에게 인기다. 뽕잎과 감잎차는 당뇨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한때 산내농협 감사까지 역임한 그는 농사꾼의 삶을 살아왔다. 85년 차세계에 입문한 그의 차에 대한 노하우는 전적으로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것이다. 그는 차인들에게는 불문율로 받아들여지는 구증구포(九蒸九曝·차를 만들 때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씩 하는 일) 룰을 달리 해석한다.

“단순히 찻잎을 아홉번 찌고 말리는 걸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중국인들은 ‘9’라는 숫자를 하늘 구만리, 구중궁궐이란 말에서 보듯 ‘오래, 많이’로 해석한다. 구증구포란 ‘최선을 다해 진심과 정성을 다해 차를 만든다는 불퇴전의 각오’를 의미하지 횟수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이종우가 실험적으로 만든 차가 있다. 바로 표고와 송이버섯을 접붙여 만든 ‘백송고차’다. 양송이처럼 생긴 백송고는 갓은 표고버섯, 줄기는 송이의 맛을 간직하고 있다.

그 향기가 궁금해 경주 광명동에서 ‘광명농산’을 꾸려가는 억척스러운 기질의 강인숙씨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암수술을 했고 8차례의 항암치료, 39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맞는 식재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했다. 제2의 인생을 우연찮게 알게 된 백송고와 함께하기로 맘을 먹고 재배농장을 설립한다. 대전에 있는 연구소로부터 포자가 입식된 배지를 받아 직접 키워낸다. 낮에는 12℃, 밤에는 15~16℃, 습도도 60~70%를 유지해야 된다. 입식해서 수확까지 15일 정도 걸린다. 백송고 요리 다원화를 위해 동국대 벤처기업인 프리앤아이의 책임연구원인 이용대 박사와 손을 잡고 백송고를 넣은 탕수육, 만두, 떡갈비, 강정 등에 이어 아이들을 위해 버섯과자까지 시판할 작정이다.

갓 수확한 백송고를 한 입 씹어봤다. 송이향이 상당했고 표고보다 더 졸깃한 식감이 느껴졌다.

◆약선 한정식 명가…산드레

민속공예촌 조금 못미쳐 성테마박물관이 있다. 그 맞은편 길 건너에 약선 전문 한정식당 ‘산드레’가 약초처럼 피어 있다. 보문단지에 있는 한국역사음식문화학교 차은정 교장 밑에서 약선을 공부한 신보경 사장. 그녀가 조각보처럼 메뉴를 갈무리한다. 룸 이름도 모두 약초로 정했다. 계산대 옆에 사용하는 약초를 견본으로 전시해 놓았다. 통요리창이 있는 방은 워낙 분위기가 좋아 예약 1순위다. 맛을 보니 혼자만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이 하나같이 입에 착착 감긴다. 평소 약선전문 식당이 주장하는 것만큼 음식 맛이 받쳐주지 못해 내심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이 집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식재료 본연의 조건에 충실했다.

신 사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25년전 경주로 왔다. 당시 경주에는 황남빵을 빼곤 내세울 음식이 없었다. 지금 대릉원으로 옮겨온 60여년 역사의 ‘경주원조콩국’, 도솔마을의 ‘밥상’ 정도가 나름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등장한 순두부, 쌈밥 등이 경주의 대표음식으로 부각된 것도 이해가 안됐다. 다들 ‘경주에서 먹어야 될 음식이 뭐지’란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선 것이다. 20년 전부터 닭백숙 등 식당업을 했다.

일단 ‘경주에선 약선이라야 가장 신라스럽다’고 여겼다. 약초 공부부터 시작했다. 울산에 있는 한의사 이성재 원장으로부터 약초의 물성학에 대해 배웠다. 그제서야 질경이, 도라지, 더덕 등은 물론 일반 잡풀의 효능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약초는 약초일 뿐 그게 밥상에 올라올 건 못됐다. 약과 음식의 경계를 한참 서성거렸다.

심마니를 통하거나 불국사 시장 등에 나가서 약선에 도움이 되는 약초 리스트 50여 종을 작성했다. 약초 특유의 강력한 향과 물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약선요리도 실험요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귀, 천궁 등은 향이 너무 강했다. 자칫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약선요리가 불과 관련이 많음을 알았다. 불이 세면 약재가 타서 음식을 망치고 약하면 즙이 우러나지 않는다. 약초별로 불의 강도를 알아야만 했다.

구기자는 은은한 불에서 30분 이상 끓여야 된다. 두충은 껍질에 진이 많아 한번 볶아 증발시켰다. 천궁과 같이 향이 강한 건 말려서 사용해야 된다. 생지황의 경우 향은 별로 없는데 아린맛이 있어 이걸 중화시키는 법도 익혀야만 했다. 음식별로 맞는 약재를 하나씩 터득해나갔다. 한 음식에 한 약재가 적당하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된다.

들깨찜에는 구기자, 해물누룽지탕에는 백복령, 죽에 은행알이 들어갈 경우 은행의 독은 잣을 넣어 해독시킨다. 버섯잡채에는 능이, 잔치국수에는 두충이 어울렸다.

이 집에는 3종류의 자연밥상이 있다. 우슬초·백복령·하수오 밥상이다. 홍화꽃밥이 돋보이는 1만5천원짜리 ‘우슬초 자연밥상’을 시켰다. 죽, 오미자소스 샐러드, 우엉잡채, 구기자들깨찜, 약선떡갈비, 당귀와 단호박튀김, 마지막엔 홍화꽃밥. 죽은 타락죽을 닮았고 울금전에서는 울금향이 감돈다. 가장 특별한 맛을 안겨줬던 능이부추잡채에서는 능이향이 너무나 또렷하게 혓바닥에 달라붙었다. 구기자새우찜의 경우도 구기자와 새우를 별도로 조리해 매칭시켰다. 두 가지가 섞여 제3의 맛을 내는 게 아니고 두 기운이 서로를 더 생생하게 부각시켜주었다.

경주유기공방에서 제작한 놋그릇이 좌르륵 깔린다. 수저 받침대, 도자기로 만든 물병도 운치를 더했다. 붉게 물든 엄나무잎이 식사 내내 안을 기웃거리며 군침을 흘렸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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