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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 사람] 정학 前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017-05-12

생명과 약자 보듬어온 77년 삶의 여정 詩가 되다

20170512
최근 시집 ‘먼 데서 들리는 소리’를 출간한 정학 전 대구환경운동연합 대표가 시집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나이에 비해 늦게 첫 시집을 내는 정학의 삶에도 늘 무거운 짐이 있었다. 그는 당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고투를 계속해 왔으며 아울러 소록도의 외로운 형제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려고 뜻있는 벗들과 더불어 평생 성의를 이어왔다. 이러한 삶을 사느라고 그는 오랜 세월 밤에 안개 낀 연못가를 거닐면서 마음의 앙금들을 구슬로 빚어 닦으며 시를 써 은밀히 간직해 왔다(하략).’

구중서 문학평론가가 정학 전 대구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77)의 첫 시집 ‘먼 데서 들리는 소리’에 쓴 발문이다. 이 밖에 윤덕홍 전 교육부 장관,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 최열 환경재단 대표, 문홍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가 한평생 자연과 생명, 참길, 소외된 사람을 위해 힘써온 정 전 대표에게 추천의 글을 썼다.

정 전 대표는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의 대부다. ‘정학사단’이라 불릴 만큼 많은 후배들을 길렀고 영향력 또한 크다. 그는 경북중·고(40회) 시절 최재욱(전 환경부장관), 이문조(영남대 교수), 김광순(경북대 교수) 등과 문예반에서 활동했다. 그런 인연으로 서슬 퍼렇던 유신시절 대구지역 일간지 기자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경북편집기자회에 쓴 기고가 문제가 돼 필화사건을 겪기도 하는 등 그는 언론민주화에도 힘썼다. 하지만 제도권 언론에서 한계를 느낀 그는 1974년 기자생활을 접고 문홍주, 김하윤, 김대성 등과 참길회를 결성했다. 참길회는 가난하고, 억울하며 그늘진 곳의 사람들을 보듬고 지원하는 시민복지모임이다.


대구 민주화운동·시민단체 代父
페놀사건으로 환경운동에 눈떠
34년간 소록도 봉사활동 이어와
13일 대구서 시집 출간 기념회



그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83년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광주시민에게 속죄할 방법으로 회원들의 피를 팔아 17만원을 모아 광주의 송기숙 선생께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5·18을 계기로 더 강한 시민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회원끼리 시국토론을 하며 울분을 달랬죠. 한국기독대학연맹 같은 단체와 연대해 수련회도 가고 그랬습니다. 함석헌, 서경석, 김동길, 서남동 같은 분들과 교류했지요. 지금은 고인이 됐고 결이 달라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90년 전호영 전 대구YMCA 사무총장 등과 함께 대구경실련을 창립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또 대구 페놀사건을 겪으면서 91년 김현철 전 대구남구의회 의장,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문창식 간디문화센터장 등과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대구공해추방시민협의회를 결성해 환경운동에도 기여했다.

그가 이번에 쓴 시집 가운데 1부 ‘읽힌 적이 없는 노래’와 2부 ‘강을 보라’ 3부 ‘통재’ 등은 당시 쓴 시다. 사실 그는 시집을 낼 생각이 없었다. 시집 서문에도 밝히듯 위암으로 병상에 있을 때 구상 시인의 고명딸인 소설가 구자명이 종용하고 추진하는 바람에 출간하게 됐다.

“자명이는 핏줄은 아니지만 누이 관계입니다. 그건 구상 시인 덕분이죠. 70년대 언론계에 있을 때 나이는 21살 차이지만 사회를 보는 시각이 비슷해 구상 시인과 의기투합했지요. 주변에선 제가 구 시인의 양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구 시인께서 저를 많이 아꼈습니다. 하와이대 교수 시절에도 대구에만 오면 만나서 통음하기도 했지요.”

그는 구상 시인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구 시인의 관계도 증언했다.

“구 시인은 박정희를 ‘박첨지’라고 불렀어요. 둘은 친구 사이였지만 박정희를 탐탁지 않게 여겼을뿐더러 유신에도 반대했습니다. 박정희가 구 시인에게 ‘경향신문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하고 ‘청와대에 방만이라도 줄 테니 그냥 와 있어라’ 유혹해도 거절한 분입니다. 심지어 제가 구 시인과 친한 걸 알고 저한테도 정권에 줄을 대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웃음).”

그는 84년 참길봉사단을 결성했다. 34년간 매년 여름과 겨울 소록도에서 회원 100여명과 함께 봉사활동을 벌이고 돌아온다. 지금까지 참길회를 통해 소록도 봉사활동을 한 인원은 수천 명이 넘는다. 시집 4부에선 그의 ‘소록도 일기’를 모았다.

“처음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소록도에 ‘가지 마라’고 그랬어요. 그만큼 한센병에 대해 무지할 때죠. 하지만 지금은 봉사활동을 가고 싶어도 신청 경쟁률이 높아 탈락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합니다.”

치열한 삶을 살던 정 전 대표에게 2013년 뇌경색에 이어 위암이란 병마가 찾아왔다.

“원래 고희 때 시집을 내려 했는데 투병을 하느라 미뤄진 셈이에요. 위암 말기라고 진단받아 위를 거의 다 떼 내도 그럭저럭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다 아내 덕분이지요. 투병을 하며 쓴 시가 많은데 이번에 ‘항암일기’란 형식으로 5부에 포함됐어요.”

정 전 대표의 부인 박문자씨(75)는 신명여고 교장을 역임했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정 전 대표를 만나 지금까지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동행하고 있다.

한편 정 전 대표의 출간기념회는 13일 오후 5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내 아르떼 레스토랑에서 열린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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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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