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진 ‘단어 여섯 개 소설’ 제목의 글이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쓴 간결하면서도 수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슬픈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단어 여섯 개 소설’은 헤밍웨이가 술자리에서 지인들과 내기 끝에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지인들은 헤밍웨이의 글솜씨를 시험하기 위해 6개의 단어를 사용해 슬픈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내기를 걸었다. 잠시 고민하던 헤밍웨이는 ‘아기 신발을 팝니다. 한 번도 안 신었어요(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라고 썼다. 신발을 신을 수 없었던 아이의 사연과 부모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는 여섯 단어에 함축시킨 것이다. 신발을 한 번도 신겨보지 못하고 갓난아기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거나 신발마저 팔 수밖에 없는 가난한 어미의 심정을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다가 불임 판정을 받은 부부의 슬픈 이야기 또는 세상에 태어나 걸을 수 없는 아기를 둔 부부의 사연일 수도 있다. 아기와 부모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신발은 어디서 어떻게 팔고자 하는지는 글을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짧은 소설을 쓴 것이다. 당시 내기를 걸었던 헤밍웨이의 지인들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아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헤밍웨이의 ‘단어 여섯 개 소설’과 버금가는 시가 있다. 한 번 읽으면 평생 잊지 못한다는 ‘은수저’ 제목의 시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김광균 시인이 쓴 시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라는 뜻이 담긴 은수저와 방석이 놓여있는 것은 돌잔치를 치른 뒤에 생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밥상의 은수저와 한밤중 들창을 오가는 바람과 들길에서의 맨발 아기는 공황 상태의 부모의 심경을 사진처럼 찍어 내기에 충분했다. ‘단어 여섯개 소설’과 ‘은수저’에 들어 있는 속사정은 읽는 이의 몫이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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