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환율 시대…투자 전략은?
달러 약세가 장기화되면서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이 길어지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선 같은 물건을 수출하고 받은 달러의 가치가 종전보다 낮아져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 이런 탓에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국내 세탁기와 태양광에 대해 발동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보다 환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책정한 적정 환율보다 현재 환율이 더 낮은 상황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것.
국제무역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50만달러 이상 수출기업 514개사가 올해 사업 계획에 책정한 평균환율은 1천90원이다. 조사 대상의 절반에 달하는 49% 기업은 환율을 1천75~1천125원으로 예상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현재 한국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환율 수준을 1천184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25일 환율은 1천60원대를 기록, 약 10년 만에 1천50원대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50만달러 이상 수출기업 514개사 조사
올해 사업계획 책정 평균환율 1천90원
일반 투자자 새로운 투자 기회될 수도
달러화통장, 5천만원까지 예금자 보호
수익적 측면에선 정기예금 방식이 도움
달러 상장지수펀드 주식처럼 매매 가능
중위험·중수익 주가연계증권도 관심을
더욱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달러 약세를 환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글로벌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므누신 장관은 “무역과 기회 측면에서 확실히 약달러가 미국에 좋다"고 밝혔다. 세이프가드 발동 등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에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므누신 장관의 발언으로 달러 약세가 심해진 것.
수출 기업의 입장에서는 달러 약세가 부담일 수밖에 없지만, 일반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투자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이런 기회를 노려 달러 투자에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고,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는 투자의 격언처럼 깊은 계곡에 빠져 있는 환율이 언젠가 높은 산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늘어난 개인 달러화 예금
지난해 초 환율은 1천200원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최근 1천50원대로 3년2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달러 투자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지난해 3차례 금리를 올린 미국이 올해도 추가로 3차례 금리를 올릴 경우 환율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으로 속칭 ‘물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달러 투자에 나서는 이들은 달러화 예금 통장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환전해서 현금으로 보관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할 경우 환전 수수료를 물어야 하고 분실·도난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통장을 만들어 원화를 입출금하는 것.
달러화예금 통장은 원리금 합계 5천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수시 입출금식 예금은 금리가 연 0.1% 정도로 낮은 편이지만, 달러화를 사서 곧 써야 한다면 수시 입출금 방식을 택하는 게 좋다. 하지만 투자를 목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묵혀 둘 수 있다면 정기예금 방식이 수익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이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달러화 예금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외국환은행의 거주자외화예금은 830억3천만달러로 전달보다 26억2천만달러 증가했다. 통화별로는 미국 달러화가 707억9천만달러로 85%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유로화예금은 3억3천만달러가 감소한 반면, 달러화예금과 엔화예금은 각각 26억5천만달러와 2억2천만달러가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732억8천만달러로 사상 최고를 찍었던 거주자외화예금은 11월 71억3천만달러가 늘어난 804억1천만달러로 800억달러 선을 돌파한 뒤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별로 보면 국내은행이 703억4천만달러로 전체의 84.7%를 차지했고, 외은 지점(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은행)이 126억9천만달러로 나머지를 차지했다. 증가액은 국내은행이 23억3천만달러, 외은 지점이 2억9천만달러였다.
눈길을 끄는 점은 개인 달러화예금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개인 달러화예금은 152억1천만달러로, 전월보다 22억8천만달러 증가했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큰 증가 폭을 기록한 것이다. 12월도 전달보다 8억7천만달러가 증가한 160억8천만달러를 기록했다.
개인 달러화예금은 최근 몇 년 사이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54억3천만달러이던 개인 달러화예금은 2014년 59억달러, 2015년 75억5천만달러를 기록한 뒤 2016년에는 102억3천만달러로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160억달러 이상으로 4년 전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달러로 투자, 환율 상승으로 추가 이익
‘외화예금통장’ 외에도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달러 상장지수펀드(ETF)’도 달러 투자의 방법 중 하나다. 미국 달러선물지수를 기초로 삼는 달러선물 ETF는 달러의 방향성에 투자할 수 있다. 레버리지 ETF는 달러가 강세일 때 투자자가 수익을 얻는 반면 달러가 약세일 경우에는 지수와 반대로 움직이는 인버스 ETF 상품이 수익을 낸다. 이런 탓에 달러 약세가 진행된 최근 3개월간 ETF 상품 수익률을 보면 인버스 상품은 수익을 냈다.
KG제로인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의 삼성KODEX미국달러레버리지 상품 3개월 수익률은 -13.34%를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삼성KODEX미국달러선물인버스 수익률은 15.16%였다. 또 미래에셋TIGER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 3개월 수익률은 -13.17%였지만, 미래에셋TIGER미국달러선물인버스 수익률은 14.97%를 기록했다.
중위험·중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는 달러 주가연계증권(ELS)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달러 ELS 상품은 달러가 강세일 때 이익을 보지만, 약세에서도 최소한의 수익률을 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달러 약세로 환차손이 나더라도 달러 강세 시점을 기다려 만회가 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달러를 바꿔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현재 환율이 낮은 탓에 주가 상승에 환율까지 오르면 두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 환율이 하락한 덕분에 미국 주식에 투자할 달러를 싼값에 살 수 있다. 해외주식 투자에 처음 나설 경우 글로벌 우량 기업들이 상장돼 있는 미국 주식시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저환율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국내 주식시장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저환율은 수출에는 독이지만 내수에는 약이어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내수가 기본적으로 성장의 큰 그림이 되는 이른바 준선진국으로 봐야 하는 만큼 원·달러 하락의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클 수 있다”면서 “달러가 약세라는 것은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보다 좋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만큼 국내 주식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중·소형주가 많은 내수주 중심의 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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