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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샤론 맥과이어 감독·2016·영국)

2018-06-15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샤론 맥과이어 감독·2016·영국)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샤론 맥과이어 감독·2016·영국)

영화를 보다 엉뚱한 장면에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 중 3편의 제목은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다. 너무나도 유명해져버린 이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데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천방지축 사고뭉치 브리짓이 비로소 성숙해 보이는 시점이었다. 브리짓이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돌아서는 장면, 즉 홀로서기를 하는 장면에서였다. 모든 눈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이 느닷없는 눈물에도 물론 사연이 있다.

예전에 책을 출간하고 나서 라디오 생방송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지역 작가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글도 그렇지만 말에는 더욱 자신이 없는 나는 방송작가가 미리 준 열몇 개의 질문에 빽빽이 답을 썼다. 그리고 몇 번이나 읽어보고 연습을 했다. 생방송은 역시 떨리고 긴장되었다. 하지만 한때 연극무대에 섰던 나는 연기를 하듯 막힘없이 술술 읽어나갔고, 방송을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잘하느냐는 거였다. 그런데 딱 한 사람, 같이 사는 이는 냉정하게 말했다. “왜 다른 사람처럼 말하지?”

아무래도 방송 중 나는 너무 달변이었고 너무 씩씩한 척했던 것 같다. 그렇게 캐릭터를 잡고 연기했다는 것을 들켜버렸다. 30여 년 함께 산 사람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렇게 애썼지만 아직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평소에 나는 자신감 있고 씩씩한 여성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만큼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고, 말주변 없는 내가 싫었다. 첫 라디오 인터뷰가 너무 떨렸던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설정해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지만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브리짓 존스의 모습이 내 안의 뭔가를 건드렸다.

사실 그녀는 내가 어릴 때 무척이나 좋아하던 ‘빨강머리 앤’이 어른이 된 모습 같다. 실수투성이지만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는 않는다며 늘 당당한 앤을 보며 어릴 때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전편들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진 브리짓 존스를 보자 알게 모르게 그간 나를 무장시켰던 내면의 잠금장치 하나가 스르르 풀리고 그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임신을 한 브리짓이 영원한 연인 마크 다시에게서 정신적으로 독립을 하는 장면에서였다.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눈물이 난 순간 알았다. 내가 많이 긴장했었고 또 남편의 말 한마디에 많이 속상했다는 것을. “긴장해서 오버한 거”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당신 자체로 가치있고 소중해”라는 다음 말이 아니었으면 그를 한동안 미워할 뻔했다.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 즉 자연스럽다는 것은 가장 큰 미덕이고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실수투성이라 해도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그 모습은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움이라는 가장 예쁜 옷을 걸치게 한다. 바로 이 점이 브리짓 존스라는 캐릭터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1·2·3편 모두가 재미있는, 흔치 않은 시리즈다. 2001년에 1편이 나왔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고 배우들도 많이 늙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에도 출연 배우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르네 젤위거·콜린 퍼스 모두 여전히 멋지다. 자연스러운 주름과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력이 영화를 더욱 맛깔스럽게 한다. 역시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인 것이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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