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하는 것이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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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란 말이 있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의 한 구절이다. 우리를 걱정, 근심으로 몰아가는 ‘인생의 먼지’들은 닦아내고 닦아내도 어느새 또 쌓여있다. 산다는 건 이런 먼지들과의 전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날마다 걱정, 근심, 두려움, 혹은 죄책감을 비롯한 부정적인 생각들과 전쟁을 치른다. 대부분 패잔병처럼 질질 끌려 다니며, 한숨의 나날을 보내기 마련이다.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괴롭히는 이런 ‘마음의 먼지’들을 어쩌면 좋을까?
영화 ‘몬스터 콜’은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에 갇혀 스스로가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겨운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병든 엄마와 학교 폭력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열두 살 소년 ‘코너’는 상상 속에서 거대한 나무괴물 ‘몬스터’를 불러낸다. 코너를 찾아온 몬스터는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코너가 자신의 악몽을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한다. 코너가 매일 밤 꾸는 악몽은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차마 꺼낼 수 없었던 진실이다. 이야기를 다 들려준 몬스터는 코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악몽에 시달리던 코너는 ‘그것을 말하면 죽을 줄 알았다’던 이야기를 마침내 꺼낸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 이야기를 하면 죽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함께 소감을 나누는 모임이 있다. ‘몬스터 콜’을 볼 때였다. 열 명 남짓 영화를 보고난 우리 모두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영화를 보는 모두의 마음 한 구석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좋은 영화를 함께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울림이 크다는 것이고, 보고 난 후의 느낌을 나누다보면 영화의 내용까지도 한결 더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폭발력 있는 영화가 바로 이 ‘몬스터 콜’이었다. ‘몬스터 콜’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처나 상실, 그리고 죄책감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동화의 형식을 띠지만, 결코 아동용이 아니다. 청소년 혹은 성인용 동화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대개 그 중간 어디에 속해 있다고,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한 존재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흑백 논리로만 말할 수 없는 현실을 냉정하게 말한다. 판타지 형식을 빌려 결코 단순하게만 설명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코너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죄책감이었다. 그는 아픈 엄마로 인해 왕따가 되어 학교 폭력에 시달리자, 엄마가 어떻든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런 이유로 꿈속에서 엄마의 손을 놓아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엄마가 낫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죽더라도 얼른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두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든 이 ‘양가감정’을 털어놓은 코너는 비로소 평안을 얻고, 가슴 깊이 묻어둔 고백을 한다. 바로 사랑하는 엄마가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 양가감정 속에서도 그것이 진짜 마음이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엄마와 코너는 이별 의식을 치른다.
몬스터는 코너에게 말한다. “네가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무엇을 하느냐다”라고. 인간이란 양가감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존재고, 그런 자신을 너무 못견뎌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든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말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우리를 위로한다. 그 말은 다시 뭔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유독 흐느끼는 한 사람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서이기도 하고, 자신의 오랜 병중에 그것을 견딘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위로가 되고 힘이 난다고 했다.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한다. 돌아서면 어느새 쌓여있는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하자. 물론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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