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새 아이템 발굴없이
대구시 기존 정책만 재나열
역사적 두 사업 연계 안되고
관풍루로 살피던 넓은 세상
제대로 못 보는 것 같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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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는 곳이라 해서 관풍루(觀風樓)라 했다. 1601년 대구에 경상도를 총괄하는 관청으로 감영이 설치되면서 감영 입구에 포정문을 짓고 그 위에 얹은 누각의 이름이다. 지금으로 보면 경남북도와 부산, 울산을 아우르는 감영의 관찰사가 대구부에 고립되지 말고 멀리 세상을 살피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지방인 대구에는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관풍의 인식이 있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 차원에서는 내부적 경복(慶福)에만 치중했는지 큰 세상의 흐름을 멀리까지 읽지 못했다. 결국 폭력과 강압을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의 광풍에 조선은 고개를 숙였고, 을사늑약 다음 해인 1906년에 대구읍성이 헐리면서 관풍루는 제 모습과 자리를 잃고 말았다.
경상도의 중심도시로서 대구의 자존심을 상징하던 존재가 관풍루였다면 이 누각의 유전(流轉)은 흡사 대구가 처한 작금의 현실 같다. ‘서울대구부산’이 아닌 ‘서울부산인천’으로 그 위치를 잃어가는 대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풍루가 제자리인 경상감영 터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제라도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선화당과 정문인 포정문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게 되어 다행이다. 대구가 당당히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의 번영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으로 이전의 아픔을 겪었던 관풍루를 110여년 만에 제자리에 복원하는 사업이 대구시가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3·1독립운동 100주년 사업의 맥락과 연결되지 않고 있다. 2019년이면 100주년이 되는 3·1운동은 아시아 여러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고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글로벌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3·1운동은 당시 두 개의 국제적 평화회의와 관련되어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1919년 1월 개최예정인 프랑스 베르사유 세계평화회의였다. 1918년 겨울 천도교에서는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참석해서 세계인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1919년 1월 고종이 서거함에 따라 고종황제의 장례일에 맞추어 3월1일에 만세운동을 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고종황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열사를 보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다가 폐위되었기에 3·1운동은 이 두 번의 국제적 평화회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3·1 독립선언서는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유로운 인민임을 선언”한 명문장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포용과 평화의 사상을 천명한 문서였다. 이는 지난 11월 말 대구시가 3회째 개최하고 있는 대구글로벌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했던 아시아의 석학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평가다.
이렇듯 중요한 3·1운동의 100주년이 이제 눈앞인데 대구시는 3·1운동 기념사업을 위한 제대로 된 계획안을 아직까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사업에 명칭과 의미만 새롭게 부여해서 3·1운동 100주년 사업으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관풍루의 이전 복원과 같은 사업이 100주년 사업과 연계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 인민의 양심회복을 주장한 3·1운동의 정신을 고려하면 외국의 양심적 학자가 3·1운동 100주년과 함께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진실에 기초한 역사관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큰 명성을 얻고 있는 와다 하루키 교수를 대구의 3·1운동 사업에 참여하도록 섭외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구 3·1독립운동의 중심에 청년학생과 여성이 있었음도 유념해야 한다. 이를 모티브로 지금 준비한 기념사업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구경북이 하나의 역사적·정신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경북도와 함께하는 3·1운동 100주년사업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경상도를 관할하는 감영의 입구 관풍루는 단지 대구만의 세속을 살필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구시가 관풍루는 제자리에 옮기면서 이 누각을 통해 보려는 넓은 세상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대구가 관풍을 통해 다양성과 포용력을 갖춘 경상도의 경제중심이며 대한민국 독립의 원점이 되기를 바란다.
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대구시민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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